성찰과 일상 사이에 벽이 없어, 유쾌하게 진지할 수 있는 성직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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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호 31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1997)이라는 책은 많은 이의 인생을 바꾼 책이다. 1100만 부 이상 팔렸다. 미국에서 유명한 칼럼니스트인 미치 앨봄이 직접 겪은 일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내가 본 이동익 신부

앨봄은 루게릭병으로 생명이 꺼져 가는 대학 은사를 16년 만에 찾아간다. 만남을 통해 그는 의식적으로 외면했던 삶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한다. 앨봄은 자기 삶에서 빈 곳을 채워줄 지혜를 사회학자인 모리 슈워츠 교수에게서 찾기로 마음먹고 매주 화요일 그를 찾아간다. 슈워츠 교수가 눈감기 전까지 10여 차례 인터뷰했고 거기서 얻은 삶의 지혜를 책으로 엮었다. 인간에게 죽음은 무엇이고 삶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나도 슈워츠 교수와 같은 지혜의 은사를 만나고 싶었다.

2002년 나는 죽음을 앞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었다. 교황의 선종을 알리는 부고 방송을 미리 준비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나는 신자가 아니기 때문에 교황의 삶과 가톨릭이라는 종교를 함께 공부해야 했다.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했다.

그때 만난 분이 이동익 신부다. 신부와 인터뷰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성직자이자 존경받는 학자인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그의 연구실 문을 열었다.

인상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분이 환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연신 웃는 얼굴로 손수 차를 만들어 주시며 편안하게 대화를 이끄는 이 신부님에게 벽에 걸려 있는 사진에 대해 묻자 직접 촬영한 사진이라고 했다. 서로 같은 취미를 가진 우리는 사진 이야기에 한참 열을 올렸다.

원래 찾아온 용건인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웃음이 채 가시지 않은 그의 입매는 어느덧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많은 교수와 지식인을 인터뷰해 봤지만 일상적인 이야기에서 본론으로 들어가면 대부분 자신을 추스르고 입조심(?)을 한다. 내 입장에서는 순식간에 둘러쳐진 벽이 늘 생경하다. 이동익 신부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이야기의 방향을 전환했다. 죽음을 앞둔 요한 바오로 2세의 인간 존중 사상과 일화를 너무도 편안하게 이야기했다. 오랜 시간 학문적인 성찰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진지한 이야기를 나는 편안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일상에서 밝은 얼굴로 철학과 생명과 죽음의 주제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이야기하는 이 신부의 삶에는 진지한 사색이 골고루 녹아 있어 일상과 진지함 사이에 격벽이 없어진 듯했다. 유쾌하게 진지할 수 있는 그에게서 지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요즘 나는 매주 월요일 이동익 신부를 만나러 간다. 가톨릭대 생명대학원에서 그의 수업을 듣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사제 관계로 만나는 다소 제한적인 만남이지만 일주일에 한 번 그의 지혜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즐겁다.

내친김에 『이동익 신부와 함께한 월요일』이라는 제목의 책을 한번 써 볼까 하는 생각에 내 얼굴에도 이 신부를 닮은 웃음이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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