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1년 혼례비용 25조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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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가 한해 무려 25조원의 혼례비용을 쓰고 있다면 외국인 누가 믿을 것인가.

IMF 구제금융 절반 가량을 결혼비용에 쏟아붓고 있다니 우리가 정말 정신이 있나 하는 자괴 (自愧) 를 금할 수 없다.

허례허식의 낭비 속에서 집안이 거덜나고 나라 경제가 가라앉고 있다.

최근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혼례 1건당 평균 비용은 7천5백만원이고 한해 25조3천억원이 결혼비용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중 혼수비용이 8조원, 식장 부대비용이 4조원을 넘고 있다.

혼례 1건당 3천8백만원의 주택마련비를 빼면 모두가 혼수.의례비용이다.

89년보다도 두배 이상 늘어난 수치고 1인당 국민총생산 (GNP) 을 감안한 외국과의 비교로도 미국의 5배, 일본의 3배, 대만.싱가포르의 7배 수준이다.

이러니 국가부도가 나지 않겠는가.

사회구성원의 생활방식을 알게 모르게 좌우하는 게 생활관습이다.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관혼상제라는 의식은 우리 사회의 미덕이다.

그러나 이 미풍양속이 언제부터인지 물신풍조에 휘말려 돈으로 과시하고 측량하는 망국적 풍조로 빠져들었다. 한번 이상한 풍조에 젖어들면 고치는 데도 오랜 세월이 걸리는게 의례풍속이다.

정치.경제 못지 않게 구조조정을 해야 할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결혼 풍습이다.

오늘의 위기상황이 어떻게 왔는가.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은 나태와 무지의 총체적 결과다.

잘못된 경제구조와 정경유착의 고리라는 낡은 정치관행, 여기에 25조원을 결혼비용에 탕진하는 잘못된 사회의식 등의 총체적 결과라고 봐야 한다.

생활문화를 보면 나라를 안다고 한다.

'25조원 혼례비용' 을 부끄러움으로 알고 개선하려는 노력 없이는 이 국가위기에서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다.

분수에 맞는 경조비, 알뜰한 결혼비용으로 나 자신부터 고쳐나가는 모범을 지금부터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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