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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은 ‘건국의 아버지들’ 우남 이승만과 백범 김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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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한국 현대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우남 이승만과 백범 김구. 하지만 두 사람에 대한 시민사회의 역사기억은 긍부(肯否)와 호오(好惡)의 십자포화처럼 엇갈린다.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몰아치고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깃발이 다시 나부끼는 오늘. 우파는 해방 후 우리 역사를 서구가 200년 걸려 이룩한 산업화와 민주화를 불과 60년 만에 따라잡은 ‘자랑스러운 역사’로 자부한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번영을 지키기 위해 제국(帝國)과 손잡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들에게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고 미국과의 동맹을 맺은 이승만은 그 업적을 기려야 마땅한 ‘건국의 아버지’로 다가선다. 그러나 김구는 냉전체제의 본질을 제대로 깨닫지 못해 북한의 기만전술에 말려들고만 ‘시대착오적 정치가’로 비칠 뿐이다.

반면 제국에 당당히 맞설 민족국가의 완성만이 살길이라 믿는 좌파는 우리 현대사를 외세와 그 기생 세력에 의해 동족상잔과 대량학살이 자행된, 그리고 독재로 점철된 ‘부끄러운 역사’로 치부한다. 이들에게 김구는 민족을 단위로 한 통일국가 세우기의 당위성을 일깨우는 아이콘으로 우뚝 선다. 그러나 이승만은 민족에게 고통을 준 ‘분단의 고착화’를 초래한 ‘역사의 죄인’이자 정권욕에 사로잡혀 민주주의를 압살한 독재자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이승만과 김구에 대한 평행선처럼 합치하지 않는 역사기억은 우리 사회의 정체성에 난 균열과 골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法統)을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前文)의 정신을 마땅히 기억해야 한다. 1919년 4월 10일 상하이에 세워진 임시정부가 채택한 민주공화국의 국가 형태와 삼권분립 정신에 기초한 임시헌법이 오늘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정치체제의 시원임을 말이다. 대한민국 건국사를 임정이 수행한 민족독립운동 역사의 연속선상에서 파악할 때 1919년 대통령을 맡은 이승만과 1940년 주석에 오른 김구 두 분 모두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이라는 자기 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1946년 봄 민주의원 회의를 마친 후 악수를 나누는 사진 속 이승만左과 김구처럼 우리 시민사회도 서로 부딪치는 역사기억을 넘어서기 위해 화해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건너야 할 강물에 놓인 징검다리의 첫째 디딤돌이 될 터이다.

허동현(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