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제국에 당당히 맞설 민족국가의 완성만이 살길이라 믿는 좌파는 우리 현대사를 외세와 그 기생 세력에 의해 동족상잔과 대량학살이 자행된, 그리고 독재로 점철된 ‘부끄러운 역사’로 치부한다. 이들에게 김구는 민족을 단위로 한 통일국가 세우기의 당위성을 일깨우는 아이콘으로 우뚝 선다. 그러나 이승만은 민족에게 고통을 준 ‘분단의 고착화’를 초래한 ‘역사의 죄인’이자 정권욕에 사로잡혀 민주주의를 압살한 독재자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이승만과 김구에 대한 평행선처럼 합치하지 않는 역사기억은 우리 사회의 정체성에 난 균열과 골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法統)을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前文)의 정신을 마땅히 기억해야 한다. 1919년 4월 10일 상하이에 세워진 임시정부가 채택한 민주공화국의 국가 형태와 삼권분립 정신에 기초한 임시헌법이 오늘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정치체제의 시원임을 말이다. 대한민국 건국사를 임정이 수행한 민족독립운동 역사의 연속선상에서 파악할 때 1919년 대통령을 맡은 이승만과 1940년 주석에 오른 김구 두 분 모두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이라는 자기 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1946년 봄 민주의원 회의를 마친 후 악수를 나누는 사진 속 이승만左과 김구처럼 우리 시민사회도 서로 부딪치는 역사기억을 넘어서기 위해 화해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건너야 할 강물에 놓인 징검다리의 첫째 디딤돌이 될 터이다.
허동현(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