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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화 쯧쯧! 할리우드의 '독립투사' 앨런과 스코세지 공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미국영화는 모두 쓰레기다' .

영화에서 뭔가 진지한 사색거리를 추출해내고자 하는 이들은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영화에 대해 별 기대를 하지 않는다.

치고 받고 박장대소하게 하거나 아니면 눈물이나 질질짜게해서 돈이나 벌려는 영화들에 감독의 세계관이나 철학이 들어설 여지가 어디 있겠냐고 지레 외면해 버리는 것이다.

일견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90%가 '쓰레기' 라 하더라도 10%정도의 '진주' 는 있는 법이다.

미국에는 할리우드 시스템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자신의 영화세계를 잃지않는 일군의 감독들이 아직도 건재하다.

스파이크 리.데이비드 린치.코언 형제.로버트 알트만등 최근 10여년간을 들쳐보더라도 그같은 '작가지향적인' 감독들은 쉽게 찾아낼 수 있다.

비할리우드적인 영화의 전통, 즉 미국 내에서 인디펜던트영화 (독립영화) 의 계보를 형성하면서 후배들을 이끌어온 동시대의 대표적인 두 감독이 우디 앨런과 마틴 스코세지이다.

이들은 마천루가 숲을 이룬 뉴욕의 맨해턴에 거주하면서 미국 독립영화계를 독려하고 있다.

그런 두 사람이 최근 스코세지의 사무실에서 만나 작심하고 장시간 속깊은 얘기를 나눴다.

89년에 영화 '뉴욕스토리' 를 만들 때 접촉한 이후 두 사람이 공식적으로 환담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두 사람의 대화내용이 '뉴욕타임즈 매거진' 에 실렸다.

스코세지는 "요즘 젊은 감독들은 너무 쉽게 할리우드로 입성한다.

장편영화 한 두편 찍고는 싹수가 있다 싶으면 곧바로 스튜디오에 발탁된다.

그리곤 3천만달러라는 거금을 손에 쥐고 영화를 만든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스튜디오 시스템에 꽉 잡혀 제대로 자기영화를 만들 수 없게 되는 게 당연하다.

젊은 감독들은 우선 돈을 어떻게 다루고 권력구조와 어떻게 싸우는가부터 배워야 한다.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전투와 같기 때문" 이라고 강조했다.

일찌기 할리우드 제작자들과 싸워가면서 작품을 만들어 온, '야전경험' 이 풍부한 스코세지의 눈에는 젊은 감독들이 소모품처럼 재능을 탕진당하는 세태가 안타까웠던 것이다.

이 말을 받아 앨런은 미국 젊은이들의 영화문화가 얼마나 부실하고 경박한지에 대해 목청을 돋웠다. "언제가 대학생들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들이 유명한 감독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다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았다.

트뤼포의 '4백대의 구타' 나 펠리니의 영화에 대해서 거의 지식이 없었다.

대학에서는 마크 트웨인이나 플로베르, 멜빌의 소설은 읽히면서도 정작 걸작 영화들은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가 자랄 때만 해도 존 포드나 펠리니의 작품들을 언제든지 볼 수 있었다.

젊은이들은 스테디 캠이나 특수효과등 기술적인 면에서는 일반인들보다 훨씬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영화의 역사에 대해서는 백지 상태이니 앞날이 걱정된다" 며 한탄했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되레 영화가 뒷걸음질 치는데 대해서도 우려를 함께 했다.

"나는 6년전부터 액션영화를 거의 보지않는다.

특수효과로 요란스럽기만 할 뿐 영화적인 재미가 전혀없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사건들이 강약과 완급의 리듬을 타면서 클라이맥스를 향해 전개되었다.

그러나 최근 영화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클라이맥스.클라이맥스…뿐이다.

요즘 영화는 악당이 왜 죽는지를 보여주지 않고 어떻게 죽는지를 보여주는데 몰두한다" 고 스코세지가 열을 내자 앨런도 "영화기술의 발전은 스토리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데도 많은 감독들에게 테크닉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고 있다" 고 맞장구를 쳤다.

이영기 기자

<독립영화의 두거장 약력>

▶우디 앨런 : 1935년 뉴욕 브루클린의 유태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대여섯살 때부터 부모 손에 끌려 극장을 들락거리면서 상당히 많은 영화를 섭렵했다.

고교시절부터 TV나 라디오, 카바레 코미디언들을 위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58년 카바레 코미디언이 되면서 영화 시나리오에도 손을 뻗었고 감독까지 하게 되었다.

69년 '돈을 갖고 튀어라' 로 데뷔한 그가 대중적인 명성을 얻게된 계기는 77년 '애니홀' 이 아카데미상을 타면서부터였다.

'브로드웨이를 쏴라' (94년) '마이티 아프로디테' (95년)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96년) 등이 극장에 걸리면서 한국관객들에게도 익숙한 인물이 됐다.

최근작 '해리 헤체하기' 가 다음달 미국에서 개봉된다.

▶마틴 스코세지 : 1942년 뉴욕의 이탈리아계 이민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신부가 되려했으나 꿈을 바꿔 뉴욕대학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다.

69년 '내 문을 두드리는 자는 누구인가' 로 장편영화에 데뷔했고 76년 '택시드라이버' 가 칸영화제 대상을 타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비열한 거리' (73년) '분노의 주먹' (80) '코미디의 왕' (82) '좋은 친구들' (90) 등 뛰어난 작품들을 줄줄이 만들었다.

티벳의 달라이 라마의 일대기를 그린 최근작인 '쿤둔' 이 다음달 미국에서 개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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