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웨이 신작 '첫사랑' 발표 홍콩서 기습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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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왕자웨이가 12월4일 서울에 온다.

올들어 두번째다.

이제는 그의 존재나 그의 스타일이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나 신작 '첫사랑' 에 대한 세계의 주목은 여전했다.

왕자웨이 스타일의 정점이라는 소문이 무성했기 때문이다.

22일 홍콩에서 기습 시사회를 가진 왕자웨이를 기습적으로 만났다.

"크레이지!" 왕자웨이는 새 작품인 '첫사랑 (初戀)' 에 대해 이렇게 일갈했다.

"첫사랑을 할 때는 누구나 미친 듯이 빠져들지 않는가" '첫사랑' 제작은 의외였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王은 중국의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하는 젊은이들을 다룬 '북경지하' 를 준비하고 있었다.

중국당국에서 영화내용을 문제삼아 현지 촬영 허가를 잘 내주질 않아 지지부진하던 올 여름 그에게 홍콩의 유명한 코미디언 음악DJ 거원웨이 (葛文慰)가 찾아왔다.

'첫사랑' 에 관한 영화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첫사랑은 우리를 미치게 만든다.

혹은 첫사랑만큼 미치는 사랑은 없다" 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연출 왕자웨이, 촬영 도지펑 (杜可風.크리스토퍼 도일) , 편집.미술 장슈핑 (張秀萍) 의 王사단은 당장 모든 일을 접어두고 여기에 뛰어 들었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크리스와 장은 나보다 더 영화에 미친 녀석들이다.

'可風' 이란 이름부터 미쳤다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첫사랑은 영화였다."

王사단은 당장 영화의 대강을 짰다.

첫사랑은 익숙하지 않고 잘 통제되지 않는다.

사랑이 다가설 때까지 뭐가 뭔지 모른다는 것이다.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로 밤에만 일하는 순진한 청년 진청우 (金城武) , 몽상에 젖어있는 소녀 리웨이웨이 (李維維) .이들은 첫사랑의 몽상에 완전히 무의식적으로 빠져든다.

한편 첫사랑의 고통을 감내하지 못해 10년간 사랑 공포증을 앓아오던 거원웨이는 옛애인 무원웨이 (莫文僞) 를 만난다.

그들은 첫사랑 이후 미친 인생을 살아온 자신들을 발견하게 된다.

'중경삼림' '타락천사' 에서처럼 두 가지의 사랑이 전체적인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두 가지의 사랑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러나 끝나고 극장을 나서게 되면 또 다른 하나의 사랑을 느끼게 될 것이다."

여기서 王은 타고난 피에로인 葛을 사랑의 주인공이자 미친듯이 영화를 찍는 영화감독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확정된 시나리오는 전혀 없었다.

" '부에노스 아이레스' 에서도 시나리오는 물론 연출자 없이도 너무나 멋진 장면들을 여럿 잡았었다" 거원웨이와 도지펑이 찍어온 필름을 다시 편집하고 미진한 부분은 본인이 나서서 찍어댔다."

내일 극장에 걸리더라도 편집이 끝난 필름을 보기는 어렵다" 는 것이 왕자웨이 영화의 특징이다.

"단순한 만남의 사랑이 아니다.

사랑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다니 놀랄 것이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이러한 미친 행동이 바로 창조성의 원천이라고 강조한다.

하나의 영화를 만드는 데에 보통 감독들의 10배에 달하는 필름을 소비한다는 王사단의 제작방식과 설명하기 어려운 힘을 요약하는 단어는 "크레이지" 였다.

단순히 미친 것이 아니다.

첫사랑은 일단 관계를 맺게되면 정말 돌이키기 어려운 어떤 것이라고 한다.

이를 그는 한자로 꽉 매인다는 뜻의 "纏 (전)" 이라고 표현했다.

영화 '첫사랑' 을 전체적으로 이끄는 힘은 이상한 홍콩식 랩 음악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를 찍으면서 우연히 듣게된 남미 유행곡을 '크레이지' 하게 각색해서 만든 노래다.

노래 제목도 '첫사랑에 사로잡힌 4명의 세계' . 뮤직비디오보다 더 현란한 화면을 보여줬던 왕자웨이는 영화의 예고편과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 클립을 만드는데에는 카메라 그립까지 직접 잡았다.

노래와 화면은 영화 만들기에 미쳐있는 감독과 스탭들의 모습들을 정신없이 묘사하고 있다.

영화에 미쳐있던 자신과 동료들, 영화에 대한 '첫사랑' 의 경험을 담아내는 것이다.

우위선 (吳宇森) 이나 쉬커 (徐剋) 는 할리우드에 진출하고 있지만 王은 "홍콩반환 이후에도 여전히 신나게 만들수 있다" 며 꿋꿋이 홍콩을 지키면서 영화 실험을 하고 있다. 왕자웨이가 처음으로 제작까지 손을 대 '웡카웨이 (WKW)' 사단을 만들어가는 첫 작품인 '첫사랑' 은 국내에선 크리스마스때 개봉된다.

홍콩 = 채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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