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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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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세계에서 제일 큰 상금이 걸린 상은 뭘까. 노벨평화상(130만 달러)? 아니, 그보다 최소한 네 배나 주는 상이 있다. 2006년 제정된 ‘이브라힘’상이다. 설립자인 수단 출신 기업가 모 이브라힘(63)의 이름을 따왔다. 수상자에겐 50만 달러씩 10년간 총 500만 달러(약 65억원)를, 이후 죽을 때까지 20만 달러를 매년 지급한다. 자격 요건은 이렇다. 합법적 선거로 뽑힌 아프리카 국가 수반일 것, 임기가 끝난 뒤 곱게 물러났을 것, 무엇보다 재임 중 부정부패 혐의가 없을 것. 즉, 쿠데타 후 장기 집권하며 뇌물로 맘껏 배불린 자는 안 된단 소리다.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등 선정위원들이 모래밭에서 바늘 찾듯 탐문한 끝에 지금까지 두 명의 수상자를 냈다. 1회 수상자는 조아킹 시사누 전 모잠비크 대통령, 2회는 페스터스 모하에 전 보츠와나 대통령이다. “상금 타면 빚부터 갚겠다”고 한 시사누 대통령의 수상 소감을 보니 제대로 고르긴 한 것 같다. 그러나 모부투 세세 세코(콩고), 사니 아바차(나이지리아) 등이 권좌에서 수십억 달러를 챙긴 전례에 비하면 그깟 상금은 껌값에 불과하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평생 먹고 살 돈 대줄 테니 제발 부패만 저지르지 말라”는 취지가 달성될지 의심스럽다는 거다.

하지만 서구와 달리 퇴임 후 강연·저술로 떼돈 벌 일 없는 아프리카 지도자들로선 부패와 절연할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는 게 이브라힘의 주장이다. 어떻게든 해묵은 도둑정치(kleptocracy)를 뿌리 뽑아 보려고 내놓은 궁여지책이다. 아프리카 국내총생산(GDP)의 무려 4분의 1을 정치인·관료들이 도둑질해 해외로 빼돌린다니 그럴 만도 하다. 물론 도둑정치가 아프리카에 국한된 건 아니다. 수하르토 집권기 인도네시아에선 관료들이 뇌물을 받곤 당당히 영수증을 끊어주는 일까지 벌어졌다 한다. 당시 그 나라에선 “누가 염소를 훔쳐가도 절대 신고하지 말라”는 우스개가 유행했었다. 경찰·판사에게 돈을 찔러주다 보면 애꿎은 소까지 도둑맞는 셈이 되기 때문이란다.

하긴 속 편히 남의 나라 얘기할 처지가 아니다. 새록새록 드러나는 지난 정권의 부패상에 기가 막히는 요즈음이다.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척했던 그네들이기에 충격이 더하다. 경제학자 맨커 올슨은 “다시 올 계획이 없는 한 도적 무리는 남김없이 약탈해가는 법”이라고 비유했었다. 그들 역시 언제 또 기회가 올지 모르니 좋은 자리 있을 때 챙기고 보자 싶었을 게다. 우리도 ‘떠난 후 뒷모습이 아름다운 지도자 상’이라도 만들어야 될 모양이다.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