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부실정리 외국사례…일본, 불량채권 60조엔 이상 추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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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일본 금융기관이 안고 있는 불량채권은 지난해 9월말 현재 29조2천억엔이라고 대장성이 발표했다.

지난해 3월에 비해 5조6천억엔이 감소한 것이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은 불량채권까지 합하면 아직도 60조엔 이상의 불량채권이 남아있을 것이란게 국제금융시장의 추측이다.

지금까지 일본의 불량채권 해소의 골격은 주요 금융기관들이 출자한 공동채권 매입기구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이 기구가 지난해말까지 매입한 부실채권의 액면금액은 13조6천억엔. 대장성은 "부동산의 가격하락으로 공동채권 매입기구가 실제 매입할 때의 평균 손실율은 액면금액 대비 70%가 넘는다" 고 밝혔다.

그만큼 금융기관들이 엄청나게 많은 악성채무를 떠안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공동채권 기구가 매입한 담보 부동산의 매각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

올해 3월까지 매각율은 15%에 머물러 공동채권 매입기구 자체가 부실화되어 버리는 모순을 낳고 있다.

대장성은 이에따라 성업공사와 같은 성격의 특별회사를 따로 만들어 불량 담보 부동산의 매입에 나서도록 할 예정이지만 이 또한 성공할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금융상황이 불투명해지자 일본 야당 간사장들은 지난 19일 미츠즈카 히로시 (三塚博) 대장상의 해임결의안을 국회에 공동으로 제출했다.

사실 일본은 불량채권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국제적 신뢰는 물론 본격적인 경기회복과 금융개혁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다시 대두되고 있는 것이 공적 자금의 도입. 한 마디로 국민세금을 동원해 근본적으로 불량채권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재정개혁을 이유로 공적자금 투입에 극력 반대해온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 총리도 20일 가토 고이치 (加藤紘一) 자민당 간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재정자금 투입을 검토하도록 하라" 고 지시했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유력하게 검토되는 방안은 예금보험기구가 정부보증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 금융기관을 지원하고 불량채권을 끌어안는 방식이다.

그러나 공적 자금 도입에 가장 큰 걸림돌은 국민의 반발이다.

금융기관의 방만한 운영과 관료들의 경제정책 실패로 발생한 불량채권을 왜 국민의 혈세 (血稅) 로 막아주느냐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난해 1월 경영파탄에 빠진 주택금융전문회사 (住專) 의 불량채권 해소를 위해 6천8백50억엔의 재정자금을 투입한 적이 있지만 그 여파로 무라야마 도미이치 (村山富市) 총리내각이 무너져 버렸다.

만약 공적 자금이 투입될 경우 여론무마를 위해 철저한 책임추궁이 불가피하다.

실제로 주전문제 당시 재정자금을 투입하면서 무라야마총리는 경제정책 실패의 책임을 물어 대장성 사무차관을 해임시켰다.

또 주전 최고 경영진들을 퇴진시키는 한편 퇴직금도 압수해 버렸다.

일본 검찰과 국세청은 불량담보를 맡기고 거액을 빌려간 부동산회사들에 대해서도 일제 조사에 착수, 그림이나 골프장등을 매입한 경영자를 대거 구속시켰다.

따라서 앞으로 부실채권 정리를 위해 재정자금을 투입해야 할 상황이 될 경우 그 이상의 엄격한 책임추궁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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