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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도 못 걸고 돌아와…쏘려면 빨리 쏴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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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호 04면

4일 오후 3시30분,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남쪽으로 5㎞ 떨어진 북위 37도38분의 대연평도 당섬 선착장. 10t 안팎의 꽃게잡이 어선들이 속속 입항했다. 이날 오전 7시 남쪽 연평어장에 꽃게잡이용 닻자망(고정자망)을 설치하러 나갔던 배들이다. 당초 오후 6시가 넘어 철수할 예정이었지만 이날 오후 2시 정부에서 어선 철수령을 내리면서 작업을 일찍 접어야 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오전 “곧 인공위성을 발사하게 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긴장 높아가는 서해 NLL, 연평도 어장에선

어항에 들어온 어선 진흥 3호의 선장 김환휘(41)씨는 햇볕에 짙게 그을린 이마를 찡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죽을 지경입니다. 그물도 못 걸고 돌아왔어요. 기름 값에 선원 일당까지 손해가 막심합니다.”

김씨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소형 크레인과 굴착기를 이용해 한 뭉치에 3t이 넘는 닻자망 어구 세트와 무게가 1t이 넘는 닻 4개를 배에 다시 실었다. 내일 이른 아침 출항을 위해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가 임박했다고 밝힌 4일 연평도는 어장은 물론 섬 안에서도 하루 종일 긴장감이 감돌았다. 해병대 연평부대가 지키고 있는 대연평도 안에는 비상경계령이 내려졌다. 평소 민간인이 자유롭게 다니던 도로 곳곳에서 낮부터 무장한 초병들이 검문검색을 실시하고 있었다. 기자가 주민 차를 얻어 타고 해주 땅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섬 동쪽 전망대로 향하자 초병이 차를 세우고 기자의 이름과 소속사를 물었다. 초소로 들어가 본부와 통신을 하고 나서야 길을 터 줬다.

해경 출장소에서 만난 한 해병대 원사는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한다고 말한 8일까지는 경계근무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섬 안의 한 중국 음식점에 들어가자 TV에서 YTN 뉴스 앵커가 ‘북한 미사일 발사 임박’을 알리는 생방송을 하느라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음식점 주인인 50대 여성은 “불안해서 못 살겠다. 쏘려면 빨리 쏴 버려라”고 말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 해주 땅에서 피란 왔다가 연평도 사람이 돼 버렸다는 민박집 ‘연도파크’ 주인 김진화(75) 할머니는 눈앞에 보이는 고향 땅에 가고 싶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북한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지긋지긋하다”며 “이제는 더 이상 해주를 고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연평해전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민박집에 앉아 있는데 바다 너머로 천둥소리 같은 포성과 총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와 6·25가 다시 터지는 줄 알았어요.”

4일 연평어장에는 군함 4척과 어업지도선 3척, 해경 경비정 1척 등 8척의 선박이 꽃게잡이에 나선 29척의 연평도 어선을 둘러싸고 있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서해상에서 도발을 감행하는 등 만일의 사태가 벌어질 경우 입출항과 조업이 전면 금지될 수도 있다. 1999년과 2002년에도 꽃게 철이던 6월 연평해전이 터지면서 조업이 전면 중단돼 어민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해경 연평출장소 부소장을 맡고 있는 임영호 순경은 “내일도 어선의 안전을 위해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조업을 못 하게 했다”며 “북한 미사일 실험이 어떻게든 마무리되기 전에는 당분간 정상 조업이 어려울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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