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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어의 문화읽기…"서태지…" "브리티시…" "짬뽕…" 젊고 신선한 해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20.30대 젊은층은 문화를 집단적으로, 수동적으로 감상하기만 했던 기성세대와 다르다.

각자 개성있는 입맛을 갖고 문화를 골라 즐길 줄 안다.

그리고 좋아하는 장르속에 흠뻑 빠져서 매니어가 되고 나아가 자기 분야에 대한 글쓰기를 시도한다.

최근 줄줄이 출간되는 대중문화 책들은 이런 현상을 확인해 준다.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 열광적으로 소비하고 단맛.쓴맛을 모두 맛보고 나서 책쓰기를 시도하는 '매니어 출판' 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각각 23살와 21살의 젊은이인 강명석씨와 김진성씨가 쓴 '서태지와 아이들 - 그리고 아무 것도 없었다' (프리미엄북스刊) 는 나이만 보고 어설픈 아마추어라고 예단하려던 사람들을 무색하게 하는 깊이와 넓이를 보여준다.

서태지 매니어였던 이들은 기성 평론가들이 가요계 판도 변화와 청소년들의 추종 등 서태지 '신드롬' 만 다룬 것을 비판하고 '음악' 자체에 대한 진지한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즉 서태지 음악의 장르파괴적이고 장르전복적인 특성을 읽어내고 젊은층이 갖는 어두운 정서를 밖으로 끌어냈다는 점을 조명하는 등 개성있는 시각을 보여준다.

아울러 서태지의 음악이 한국 사회에서 갖는 의미, 그들의 문화 비즈니스, 그리고 지금까지도 한국 대중음악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까지 폭넓게 다루면서 서태지에 대한 입체적인 분석을 꾀하고 있어 신선한 느낌을 준다.

특히 서태지의 트레이드마크인 '저항성' 은 목표를 향한 투쟁이 아니고 자아실현을 위한 자유와 도전이라는 의미라며 서태지의 본질이 그 내부를 파악하지 못한 기성 평론가들에 의해 왜곡됐다고 강조해 눈길을 끈다.

이런 식으로 서태지에 한번 푹 빠져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부분까지 깊이있게 파고 들어간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그러면서도 맹목적인 팬들이 빠지기 쉬운 스타의 외모.복장등에 대한 유치한 숭배현상도 따금하게 비판하는 등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지독한 팝음악 매니어가 쓴 '브리티시 모던 록' (꾼刊) 도 같은 특성을 지닌다.

저자인 하세민 (34) 씨는 거의 모든 팝아티스트들의 행적을 줄줄 꿰고 다녀 '걸어다니는 음악사전' 이라는 별명을 지녔다.

그는 롤링스톤스.비틀스를 낳아 록음악의 원초적 뿌리를 제공한 영국 록음악의 역사를 살피고 각 아티스트들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면서 1백24장의 역사적 앨범까지 소개하고 있다.

오랫동안 아티스트들의 변천사와 속사정을 캐어온 매니어가 아니면 알거나 느끼지 못하는 세세한 부분까지 자세히 담고 있어 명쾌하고 이해가 쉽다는 느낌을 준다.

문화평론가 백지숙 (32) 씨는 이승희 신드롬에서 토크쇼, 순정만화 붐에 이르는 대중문화 현상의 이면을 구석구석 살펴 '짬뽕 - 백지숙의 문화읽기' (푸른 미디어刊) 를 엮어냈다.

방송.미술을 중심으로 하면서 청소년 복장, 방송언어, PC통신 유머, 목욕탕 풍경등 누구나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는, 별 것 아닌 장면에까지 서구의 문화이론을 이용한 깊이있는 문화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저자의 현실문화에 대한 매니어적인 성찰과 사고의 자유스러움, 그리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에 특히 눈길이 가는 책이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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