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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진 기자의 ‘사람·풍경’] 야학 교사하는 1급 장애인 최성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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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야학 교사인 최성미씨左가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칠판 오른쪽에 서있는 사람은 글씨를 대신 써주는 자원봉사자 정진하씨. [김성룡 기자]

“자아, 다시… 날씨가 뭐라고요?” “웨더!”

선생님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칠판을 향한 손가락이 자꾸 반대쪽으로 뒤틀렸다. “아아, 잘했어요.” 성미(36)씨가 웃자 양 볼이 아래 위로 실룩였다. 최성미, 그는 뇌병변 1급 장애인이다. 학생들은 대부분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들이다. 약 6.6㎡(두 평)짜리 컨테이너 교실은 7명의 학생과 휠체어 탄 선생님으로 몸 돌릴 공간도 없이 꽉 찼다. "weather.” 한 할머니 학생이 연필에 힘 주어 알파벳을 눌러쓰고 있는 그 시간, 교실 밖 까만 하늘에 초승달이 떠올랐다. 인천 십정동 작은자야간학교는 성미씨가 5년째 영어 선생님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일터다. 그가 처음으로 나눗셈과 영어를 배운 곳이기도 하다.

난 학생들 마음을 알아. 학교 가고 싶어서 가슴 아리는 기분, 읽을 줄 몰라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 나는 다 알아.

성미씨의 유년기 기억은 창문의 반이 담벼락에 가려진 반지하방에 갇혀 있다. 그를 업어 키운 할머니 곁을 떠나 일곱 살 때 서울로 올라온 뒤론 집에서 한 발짝도 나서지 못했다. 아버지는 “장애인이 동네 창피하게 어딜 나가려고 하느냐”고 매섭게 눈을 떴다. 성미씨는 무릎으로 기며 청소를 하고, 누워서 TV를 보며 하루를 보냈다. 아침이면 성미씨는 교복 입는 오빠와 남동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오빠가 가져오는 새 책 냄새가 좋아 코를 파묻었다.

정말 학교가 가고 싶었어. 아빠는 “박사 할 거냐, 대통령 할 거냐, 네가 학교는 가서 뭐 할 건데”하고 화를 냈지. 열여섯 살 때 할머니 돌아가시고 깨달았어. 이젠 혼자 사는 법을 배워야겠구나. 세상에 나아가야겠구나.

열여덟이 되던 겨울, 라디오에서 노틀담 장애인기술학교 광고가 흘러나왔다. 성미씨는 두 달 동안 용돈을 모아 택시비 6000원을 마련했다. 남동생 등에 업혀 병원에 갔다. 입학에 필요한 건강진단서를 끊기 위해서였다. 11년 만의 첫 외출이었다. 식당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 앞에, 성미씨는 합격통지서를 내밀었다. 아버지 몰래 기술학교에 다녔던 1년 동안 성미씨는 날아다니는 것만 같았다. 칠보공예 자격증을 손에 넣었지만 그를 받아주는 공장은 없었다. 그의 삶은 다시 반지하방으로 돌아왔다. 우연히 친구에게서 ‘야학’ 얘기를 접한 것은 스물세 살 되던 해였다. 학교에 못 가게 했던 아버지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그는 작은자야간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야학’. 그 두 글자를 들었을 때, 가슴이 뛰었어. 수업을 듣고 있으면 날 숨막히게 하던 안개가 조금씩 물러서는 것 같았어. 영어 단어를 외우고, 또 외웠지. 그 순간만큼은 휠체어 탄 나를 불쌍한 듯 쳐다보는 눈길들을 잊을 수 있었던 거야.

방송통신대 인천대학에 입학했다. 스물아홉 신입생은 전동 휠체어를 타고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에 나왔다. 생활비는 45만원 남짓한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이 전부였다. 오전 9시에 학교에 도착하기 위해 5시에 몸을 일으켜야 했다. 오후 11시 도서관 불이 꺼지면 학교를 나섰다. 2학년 2학기 중간고사 때 강의실에서 쓰러졌다. 장협착증이었다. 수술을 받은 뒤 링거를 꽂고 기말고사를 봤다. 4년 반 만에 영문학과를 평점 2.5점(3.5점 만점)으로 졸업했다.

졸업장을 받으면서 아빠 생각이 많이 났어. 아빤 생전에 ‘자식이라곤 둘뿐인데 둘 다 대학 못 보냈다’고 푸념을 하시곤 했지. 오빠랑 동생 말고 나도 아빠 자식인데….

야학 학생들은 처음엔 그를 선생님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혼자 칠판에 글도 못 쓰면서 무슨 선생님이냐”며 야학을 그만둔 학생도 있었다.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이면 온몸이 흠뻑 젖은 채 교실에 들어서는 성미씨를 보면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었다. 지난해 담임을 맡았던 반 학생 9명 중 8명은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지난해 초등영어교육지도사 자격증을 딴 성미씨는 얼마 전부터 인천 계산동 민들레장애인야간학교 강단에도 서고 있다.

어렸을 적 꿈은 피아니스트였어. 이 병만 나으면 손가락이 날아갈 듯 피아노를 두드리고 싶었어. 장애란 평생 나을 수 없다는 걸 안 뒤론 한동안 꿈 없이 살았어. 이제 내 꿈은 이 사람들이야. 저녁이 다가오면 가슴 설렌다는 사람들. 나를 선생님이라 불러주는 사람들. 

글=임미진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야간학교(야학)=정규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야간에 수업을 하는 비정규적 교육 기관이다. 작은자 야간학교는 1981년 최초의 장애인 야학으로 출발해 98년부터는 장애인·비장애인 통합 교육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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