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대 홍콩 언론인 ‘녜간누 사건’ 밀고자는 친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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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940년대 홍콩 문회보(文匯報)에서 총주필을 역임했던 시인 녜간누(·1986년 사망·사진·左). 그는 62년 모든 직위에서 해제된 뒤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몰아치던 67년 1월 ‘자산계급 반혁명죄’로 수감돼 10년간 옥고를 치른 적이 있다. 공안기관은 그가 지인들과 나눴던 대화 내용과 사적으로 주변 친구들에게 나눠준 시(詩)가 반체제 성격이 강하다는 혐의로 체포했다. 체제를 비난하는 그의 대화록과 사회주의 중국 현실을 냉소하는 시가 물증이었다.

최근 그를 밀고했던 주인공이 다름 아닌 그와 절친했던 친구였다는 게 밝혀지면서 중국 여론이 들끓고 있다. 중견 작가 장이허는 원로 화가 황먀오쯔(黃苗子·96·右)를 녜간누의 밀고자로 지목하는 글 ‘누가 녜간누를 감옥에 보냈나’를 남방주말(南方週末)에 실었다. 장이허는 중국 공산당에 의해 1호 자산계급 우파분자로 낙인 찍혔던 거물 정치인 장보쥔(章伯鈞)의 딸이다. 장은 2월 발간된 중국작가협회지 ‘중국작가’에 실린 ‘녜간누 사건 파일’을 바탕으로 황먀오쯔의 밀고 행위를 비난했다. 현대 중국의 저명한 화가·미술사가·서예가인 황먀오쯔는 한국과 일본·독일·대만에서 작품전을 열었을 정도로 저명한 문화·예술계의 거목이다.

베이징 중급법원의 판결문에 실린 녜의 죄목은 일상 대화와 시작(詩作) 활동에서 드러난 반혁명적 언사였다. 예를 들면 마오쩌둥(毛澤東)과 루쉰(魯迅)을 비교하며 녜는 “민족에 대한 신념은 마오가 루쉰보다 나았지만 민주주의 사상에선 루쉰에 못 미친다”고 말했다. 신격화된 마오를 비꼬는 말이었다. 또 그는 “정치가 실패하고 있다. 삼면홍기(대약진·인민공사·총노선) 운동은 중국의 약점만 보여줄 뿐이다. 사회주의는 인민의 기본적인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이런 사회주의가 뭐가 좋단 말인가”라며 탄식했다.

이런 대화 내용은 모두 공안기관에 보고돼 공소장에 실렸다. ‘사건 파일’을 쓴 산시(山西)성 법률 학자 위전(寓眞)은 공안기관에 의해 진술을 강요당한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기관에 협력한 이들이 고발을 주도했다고 밝혔다.

모두 녜의 친구·지인들이었지만 밀고자로 황먀오쯔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장이허는 “녜간누가 증정한 대부분의 시는 황먀오쯔에게 갔다. 왜 이 시들이 모두 공안기관에 들어갔나”라고 반문했다. 녜는 마오쩌둥의 사망으로 문혁이 끝난 76년 10월에야 석방됐다. 그는 10년 후 “너무 괴롭다”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병상의 황먀오쯔는 아직 공식적으로 이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지만 어두운 과거사를 둘러싼 논쟁은 더 뜨거워지고 있다.

심천특구보는 “녜간누 사건 폭로로 황에게 대중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成爲衆矢之的)”고 보도했다. 옹호론자들은 “그 당시엔 밀고가 보편 현상이었다. 모두 다 광폭한 시대가 낳은 비극일 뿐 황먀오쯔 개인의 짐이 아니다”며 동정하고 있다.

베이징의 언론인 위더칭(于德淸)은 “미래의 밀고자들에겐 분명한 경고가 될 것이란 점은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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