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깊이 읽기] 그리스인들만 민주주의 했을까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 세계사들로
한국서양사학회 엮음, 푸른역사
416쪽, 1만8000원

‘세계사의 변방’ 한국에서 서양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한국서양사학회가 엮은 이 책은 유럽중심적 서양사를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책은 ‘유럽중심주의의 세계사’를 넘는다. 유럽적 근대가 쌓아 올린 그 오만한 문명의 산맥을 넘어 펼쳐지는 광경은 ‘중화주의’라는 또 다른 패권적 역사관도 아니어야 한다. 그래서 세계사는 복수(複數)의 역사로, ‘세계사들’의 파노라마로 재구성돼야 한다.

현대 문명의 척도인 ‘민주주의’를 보자. 민주정의 뿌리는 그리스 아테네로 소급되고 이는 유럽적 자유정신으로 간주된다. 여기엔 ‘페르시아 전쟁’이라는 해방의 신화가 존재한다. 페르시아의 침략에 맞선 그리스인들의 싸움은 동양 대(對) 서양, ‘독재와 자유’ 사이의 전쟁으로 미화된다. 그런데 잠깐. 2500년 전의 그 싸움터에 서양과 동양이 따로 있었을까? 하나 더. 그리스인들만 민주주의를 했을까? 그리스 민주주의와 같은 의사결정 구조는 오리엔트 지역에서도 일반적인 형태였다는 연구도 있다. 이집트·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도 정치는 공공 토론과 상세한 투표절차에 의존했다고 한다.

또 16~18세기 중국과 인도의 생산력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으며, 영국의 산업혁명도 수 백년 전부터 중국에서 흘러나온 발명과 기술을 조합한 것일 뿐이라는 연구도 있다. 그토록 많은 문명이 명멸했는데 어디 역사가 한 줄기로만 흘렀으랴. 역사는 다수의 목소리다.

유럽중심주의적 세계관이 옳지 않은 건 분명하나, 그렇다고 다양한 목소리에 모든 진리가 있는 건 아니다. 책은 최신 연구성과들을 소개하며 그 주장들의 한계와 상호 논쟁도 짚어준다. “그래서 뭐가 맞다는 거야.” 볼멘 소리도 나올 만하다. 세계사‘들’이기 때문이다. 학자가 아닌 독자라면 각오해야 할 혼란이다.

배노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