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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키신 키신 키신 키신 … 앙코르 10번, 커튼콜 34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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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일 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예정된 연주가 모두 끝났는데도 박수는 그칠 줄 몰랐다. 오늘의 주인공인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38)이 느릿느릿 무대로 다시 불려나왔다. 34번째 커튼콜이었다.

2300여 명 청중은 두 시간에 걸친 프로그램을 다 듣고도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앙코르의 마지막 음이 끝날 때마다 자리에서 우르르 일어나 환호했다. 잇따라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가 객석을 환하게 밝혔다. 평소 공연장 내 촬영을 엄격히 금지했던 예술의전당 운영팀은 카메라 단속을 포기했다.

키신이 이날 선사한 앙코르는 열 곡. 쇼팽의 녹턴 Op.27 No.2로 시작해 모차르트의 소나타 K.331 중 3악장으로 끝난 ‘앙코르 마라톤’에만 1시간 30분이 걸렸다. 공연장 로비가 모자라 야외까지 점령한 팬 사인회의 줄은 자정이 지나고서야 사라졌다. 보통 한두곡의 앙코르가 연주되는 일반 음악회에서는 상상할수 없는 풍경이다.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2살부터 영재 교육을 받은 키신은 전형적인 ‘컴퓨터’ 피아니스트다. 정확하고 빈틈이 없다. 이날 프로그램 전반부를 구성한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 8번은 그의 테크닉을 잘 보여줬다. 건반의 가장 정확한 ‘타격 지점’을 찾아 오차없이 두드렸다. 음악 감상보다는 신기한 구경에 가까운 경험에 청중이 열광했다.

여기에 그쳤다면 키신은 수많은 천재 피아니스트 중 하나로 남았을 터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기계’ 이상의 ‘음악가’임을 증명했다. 쇼팽의 마주르카 세 곡에서는 멀리서 들리는 듯 아련한 음색을 효과적으로 냈다. 페달에 의존해 감정을 과장하거나 지나치게 흥분하는 등의, 기교파 연주자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도 현명하게 피해나갔다. 피아노 연주의 정도(正道)라 할만했다.

화려한 콩쿠르 수상, 명문 음악학교 졸업 경력 모두 없는 키신이 세계 일류로 평가받는 이유는 이처럼 기본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그는 3년 전 첫 내한 무대에서도 ‘세 시간 공연, 열 곡 앙코르’라는 기록을 남겼다. 한국 청중은 그가 내한할 때마다 함께 밤을 지새우며 탄탄한 실력에 찬사를 던지고 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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