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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비만, 학교·집·사회 ‘3각 대응’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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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2008년 개봉된 애니메이션 월E. 인간들은 황폐화된 지구를 떠나 노아의 방주와 같은 엑시엄호에서 생활한다. 먹는 것에서 청소하는 것까지 모든 것을 로봇들이 대신해 준다. 영화 속 인간은 혼자의 힘으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뚱뚱하다.

2009년 대한민국도 뚱뚱한 아이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성장기 어린이 비만은 성인 비만으로 이어질 확률이 80%에 육박한다는 연구조사 결과도 있고, 비만은 고혈압·고지혈증·당뇨·뇌출혈과 같은 성인병을 유발할 수도 있다. 출산율이 낮은 상황에서 지금의 뚱뚱한 아이들이 자라 뚱뚱한 성인이 된다면 성인병 천국의 대한민국이 될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성장기 비만의 근본적인 원인은 에너지 섭취와 산출의 불균형이라고 말한다. 술래잡기 1시간에 500㎈가, TV 시청 1시간에 고작 15㎈ 정도가 소모된다. 에너지 섭취량은 많지만 소비할 수 있는 적당한 수준의 운동을 하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의 비만 해소를 위해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한 때다.

주5일제로 국민들의 여가시간은 증가하고, 웰빙 트렌드에 따라 국민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기 비만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규명과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먹거리를 제한하는 것에 집중돼 있어 그 실효성이 실로 의문시된다.

영국은 국가 비만 가이드라인을 정해 1차 의료에 비만 치료를 포함시키고 과학적 근거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어린이에게 학교에서 과일과 야채를 무상으로 제공하기 위해 매년 9000만 유로(약 17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은 ‘건강 일본 21’을 발표하고 향후 3년 내로 비만인구를 10%, 6년 후까지는 25%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기업과 지방자치단체에 매년 40~74세 직원들의 허리둘레를 측정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까지 마련했다.

성장기 비만 문제는 학교·집·사회 모두의 공동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 현재 정부는 먹을 것을 제한하는 데 초점을 맞춰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비만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몸에 좋은 다양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고, 에너지를 소모할 수 있는 다양한 운동, 교육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현대의 소비자는 똑똑하다. 소비자들의 역량을 무시한 근시안적인 광고 규제는 구시대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10~20년의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한 때다. 생활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밥 먹기 전 물 한 잔 마시기’ ‘든든한 아침 먹기’ ‘자전거 등교’ 등을 가정과 학교에서 먼저 실천해 보자.

김이환 한국광고주협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