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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마뉴 대제 ‘유럽 통합의 꿈’ 1200년 뒤 EU가 이어받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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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지중해를 에워싼 세 대륙을 무대로 삼았던 세계제국 로마가 5세기에 멸망한 뒤 서양 역사의 무대는 유럽으로 축소되었다. 게르만족의 지배하에 들어간 유럽은 정치적 구심점 없는 지리멸렬 상태를 면치 못했다.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는 분열되었던 유럽을 통일했다. 샤를마뉴가 서기 800년 12월 25일에 서로마 황제로 즉위한 사건은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중대 사건’이었다. ‘유럽’이 탄생한 것이다.

그의 제국은 오래가지 않았다.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토록 힘들여 통합한 대제국은 다시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북쪽에서 무시무시한 바이킹 배들이 대담무쌍하게 센 강, 루아르 강의 물길을 따라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들의 발길이 미치는 곳마다 공포가 전염병처럼 번졌고 제국의 권위를 보여주는 증거들은 남김 없이 파괴되었다. 샤를마뉴가 죽은 지 31년 뒤인 845년에는 파리마저 약탈당했다.

화불단행(禍不單行)에 설상가상(雪上加霜)이었다. 이번에는 이슬람교도들이 남쪽으로부터 침입해 들어와 로마를 공격했고, 성베드로 성당과 사도들의 무덤을 모욕했다. 게다가 유목민인 마자르족이 제국의 동쪽 변방으로 침투해 들어와 파괴를 일삼았다. 북에서, 남에서, 동에서 외적들이 거의 동시에 침입했다. 샤를마뉴의 후손들은 제국의 정치적 통일을 유지할 능력이 없었다. 유럽은 다시 한번 서로 대립하고 적대하는 작은 세력들로 분열되었다.

그러나 통일의 역사적 기억은 그 뒤 잊힌 적이 없었다. 유럽연합(EU)은 그 기억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샤를마뉴의 ‘하나의 유럽’을 재현하자는 것이다. 사진은 EU 집행위원회 일부가 입주한 벨기에 브뤼셀의 ‘샤를마뉴 빌딩’이다. 이 건물에서 한·EU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진행되기도 했다.

EU는 2007년 말 리스본 조약 합의를 통해 경제통합을 넘어 정치통합의 꿈에 다가섰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위기로 동·서 유럽 간 갈등이 부각되면서 ‘하나의 유럽’ 개념이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천년도 훨씬 넘게 지속된 통일의 기억이 쉽사리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문제는 우리다. 통일의 역사적 기억을 갖지 못한 동아시아 3국의 미래를 고민해야 할 때다.

박상익(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