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 박정희시대]33.국산 미사일 개발

중앙일보

입력 1997.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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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사일 (유도탄) 은 비행하는 종합과학이다.

총기나 대포류와 달리 유도조정.구조해석.풍동 (風洞) 시험.추진제등 각 분야의 고도기술이 농축된 무기체계의 정화다.

첨단기술 불모의 시대였던 70년대말 미사일 국산화 성공은 무에서 유를 일궈낸 하나의 신화였다.

대통령 박정희 (朴正熙) 의 '하면 된다' 는 식의 밀어붙이기와 자주국방 의지, 국방과학연구소 (ADD) 개발팀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체였다.

미사일 개발로 원폭 (原爆) 의 운반방식도 공중투하식에서 미사일 탑재식으로 바뀐다.

대북 (對北) 방공체제도 전면 수정됐다.

72년 4월14일. 심문택 (沈汶澤.74) ADD연구소장에게 朴대통령의 특별 지시가 떨어졌다.

'항공공업 육성계획 수립' 이라는 제하의 극비문서였다.

표지는 항공공업이었지만 실제 내용은 76년말까지 장거리 지대지 (地對地) 미사일을 개발하라는 것이었다.

沈소장의 회고. "당시는 번개사업 (긴급 병기개발사업) 으로 카빈 소총등 7개품목의 시제품을 만들어 겨우 시험사격을 한 단계였습니다.

갑자기 유도탄을 만들라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 민.군 전문가들로 개발계획단이 구성됐다.

추진기관및 비행체는 이경서 (李景瑞.59.국제화재해상보험 부회장).홍재학 (洪在鶴.65.전 항공우주연구소장) 박사등 6명, 유도조종및 시험평가는 최호현 (崔浩顯.65.대우고등기술연구원 고문).구상회 (具尙會.61.세종연구소) 박사등 6명이 맡았다.

문제는 백지상태나 다름없는 미사일 제조기술이었다.

이경서 박사의 기억. "한강변 맨션에서 마스터 플랜 작성을 위한 비밀작업에 들어갔습니다.

24시간 숙식을 같이 했으며 보안사 (현 기무사) 요원들이 경호겸 감시를 했습니다.

공동생활은 상식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미사일에 대한 눈을 뜨게 만들었습니다.

" 개발팀은 박정희의 지시가 떨어진지 9개월만인 73년 1월 항공공업 육성계획을 만들어냈다.

74년말까지 중거리 무유도 로켓, 76년말까지 중거리 지대지 미사일, 79년말까지 장거리 지대지 미사일을 개발하겠다는 것이었다.

73년 3월 청와대에 보고했다.

"朴대통령은 최단 시일안에 목표를 달성하라고 재촉했어요. 북한이 개성에서 프로그 미사일 (사거리 50~70㎞) 을 쐈을 경우 우리는 전투기나 함포를 동원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전면전으로 확대되지요. 평양을 바로 때릴 무기가 필요했던 겁니다.

" (심문택씨) ADD는 이때부터 기술도입 계획을 추진하고 해외두뇌 유치에 나섰다.

재미 과학자들은 현지에서 채용돼 곧바로 연구팀에 합류했고 국내 연구원들도 입소식을 마치자마자 해외로 출장을 떠났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2년까지 미국등에서 연수했다. 미사일 개발의 숨통이 겨우 트였다.

드디어 밑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미사일 개발 과정은 험난했다.

국내 전자산업이 진공관에서 반도체로 갓 넘어간 시절이었다.

미사일 선진국의 제조기술과 생산장비를 들여오는 방법 밖에 없었다.

기술.장비 도입에는 천운이 따랐다.

이경서 박사 증언. "미사일 제조기술은 주한미군에 배치된 나이키 허큘리스 (NH) 를 생산하는 맥도널 더글러스 (MD) 사와 교섭을 벌였지요. MD사에 NH 사거리를 1백80㎞에서 2백40㎞로 늘리는 사업을 공동으로 하자고 제의했지요. MD사가 적극적으로 나와 사업을 추진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요구 액수가 무려 2천만달러였어요. 일단 기초조사.설계.개발생산 3단계로 나눠 사업을 추진키로 하고 1단계 사업비를 1백80만달러로 계약했어요. " 계약이 성사되면서 李박사등 10명은 75년초 로스앤젤레스의 MD사에서 6개월동안 기초설계 방법등을 익히게 된다.

MD사가 명확한 자료를 주지 않아 개발팀은 설계 자료를 머리 속에 넣고 숙소로 돌아와 밤새 기록했다.

6개월이 지나면서 미사일 설계에 필요한 자료와 기술을 확보하게 됐다.

2, 3단계 계약을 취소하고 독자 개발로 들어갔다.

다음 문제는 추진제 제조시설 확보였다.

추진제는 미사일의 동력으로 자동차의 엔진에 해당되는 부분. 처음엔 NH 추진제를 생산하는 다이아콜사를 두드렸으나 미 국무부의 허가가 나오지 않았다.

목영일 (睦榮一.61.아주대 교수) 박사가 차선책으로 프랑스 SNPE사와 추진제 제조시설및 기술이전을 교섭하고 있는데 미 록히드추진기관사 (LPC)가 추진제 공장을 처분한다는 얘기가 돌았다.

"귀가 번쩍 띄었어요. 마침 미국에 출장중이어서 LPC 부사장을 만나보니 공장을 통째로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굴러들어온 떡이었지요. 그러나 LPC는 장비는 팔면서도 기술은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추진제 제조기술등 소프트웨어는 프랑스에서 도입했지요. " (이경서 박사) 국내에서는 76년 12월2일 대전기계창이 건설됐다.

기계창은 미사일 개발을 숨기기 위한 위장 명칭이었다.

건설 당시 신성농장이라는 이름으로 공사가 진행됐는데 충남도경국장이 정문까지 왔다가 들어가지 못했을 정도로 보안이 삼엄했다.

朴대통령은 북한 프로그 미사일의 사거리를 벗어난 지점인 대전 근처로 하라고 지시했다.

대전기계창에 LPC의 추진제 장비가 옮겨오면서 미사일 개발은 가속도가 붙는다.

그러면서 미국의 견제가 심해졌다.

심문택씨의 증언.

"군사원조를 담당했던 미 합동군사고문단 (JUSMAC - K) 관계자들은 대전기계창 준공식때 추진제 시험광경을 보고 안색이 변했어요. 검은 연기가 나지 않는 최신형 추진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미국은 LPC의 장비를 넘길 때 추진제 기술을 주지 않아 우리의 독자 개발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한 것같아요. 얼마후 미 국방부 안보담당 차관보가 내한했지요. 그는 유도탄 탄두는 무엇을 쓰고 다음 단계는 핵무기를 탑재하려는 것 아니냐며 꼬치꼬치 캐물었어요. " 미국은 대전기계창에 JUSMAC - K 요원 6명을 보내 겉으로는 도와주는 체하면서 미사일 개발을 감시했다.

미측은 일부 기술을 넘겨주면서 미사일 사거리가 1백80㎞를 넘지 않도록 요구했다.

ADD는 미사일 개발이 급한데다 사거리는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고 판단, '1백80㎞ 제한합의서' 를 써주었는데 이것이 나중에 외교문서화돼 우리 미사일 개발 발목을 잡는다.

ADD는 78년 4월부터 자체 설계.제작한 백곰 (NHK - 1) 지대지 미사일 시험발사에 들어갔다.

시험 장소는 충남 안흥 해변이었다.

ADD J실장 얘기. "NHK - 1의 적당한 위장 명칭을 찾고 있는데 77년말 안흥 시험장에서 눈을 뒤집어쓴채 일하는 연구원들의 모습이 북극곰처럼 보여 백곰으로 하자고 했지요. '나는 곰이다' 라는 노래도 유행하고 있을 때라 연구원들에게는 큰 위안거리였지요. 시험발사는 성공반 실패반이었습니다.

" 78년 9월26일 마침내 백곰 (9호) 공개시사회가 열렸다.

"시험장에 도착한 朴대통령은 긴장과 기대감으로 얼굴이 굳어 있었어요. 초읽기가 시작되고 지축을 뒤흔드는 폭발음이 시험장을 압도하며 백곰이 하늘로 치솟았습니다.

잠시 후 군산 앞바다 표적에 명중했다는 것이 확인되자 감격의 환호성이 시험장을 뒤덮었습니다.

연구원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朴대통령도 입을 다물지 못했지요. 세계에서 일곱번째 미사일 생산국이 된 자부심이 朴대통령의 얼굴에 가득했습니다.

" (이경서 박사) .ADD는 79년 백곰 1개포대분을 생산하고 2단계로 유도 조정장치를 관성항법장치 (INS) 로 개량한 NHK - 2사업 (현무)에 들어갔다.

인공위성사업도 시작했다.

그러나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미사일 개발사업은 된서리를 맞았다.

80년 8월 沈소장.李박사등 유도탄 개발 핵심멤버들이 쫓겨났고 82년말에는 미사일 개발팀등 8백여명이 숙정됐다.

명분은 백곰이 나이키 허큘리스에 페인트칠을 해서 만든 가짜였다는 것이었다.

보안사가 미사일 개발팀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했던 상황에서 있을 수 없는 얘기였다.

"미사일 개발이 계속됐더라면 무궁화위성 발사를 외국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북한 노동미사일 개발에 호들갑을 떨지도 않았을 거고요. 미사일 개발은 지도층의 무지로 10~20년 늦어진 겁니다.

스스로 손발을 자른 기막힌 역사지요. " 미사일 개발팀은 朴대통령의 미사일 개발에 대한 집념만큼이나 신군부의 무지를 결코 잊지 못한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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