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는 표정이 있고 얼굴엔 진실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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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손은 말없는 얼굴이다. 그 얼굴은 한 사람이 살아온 궤적이다. 손과 얼굴은 곧 마음이다. 주장도 강요도 없이 그 사람의 특징을 오롯이 담고 있다. 손에서, 얼굴에서 사람을 읽는 사진전이 각각 열리고 있다.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에서 여는 ‘불 컬렉션: 손으로 말하다’전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미술관의 ‘인물사진의 거장, 카쉬’전이다.

사람을 읽는 사진전 둘 … ‘불 컬렉션’‘카쉬전’

사진가 로베르 두아노는 71세의 피카소를 식탁 앞에 앉히고 손 대신 빵 여덟개를 얹었다. 세상과 미술과 여성에 대한 호기심만큼은 절대 늙지 않았던 거장 노화가의 장난기를 살린 한 컷이다. [대림미술관 제공]


◆손에도 표정이 있다= 권투선수 조 루이스의 부르쥔 주먹, 천재 화가 피카소가 장난스럽게 테이블 위에 손 대신 늘어놓은 8개의 빵 등, 손에는 제각각 개성과 표정이 담겨 있다. 금시계 찬 손바닥을 찍고는 ‘자화상’이라고 이름붙인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이야말로 이같은 손의 특징을 잘 파악하고 있던 작가였다.

손 사진 116점과 손 조각 31점으로 차려진 이 이색적인 성찬 ‘불 컬렉션’은 미국의 금융인이자 자선사업가 헨리 불(Buhl·79)이 16년간 모은 작품들이다. 미국 사진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그의 아내 조지아 오키프를 찍은 ‘골무를 낀 손’(1920)을 시작으로 손을 주제로 한 1000여점의 사진 컬렉션을 갖췄다.

사진의 초창기인 1840년대 헨리 폭스 탈보트의 사진부터 만 레이·다이안 아버스·낸 골딘·어빙 펜·비토 아콘치·안드레아 구르스키에 이르는 160여년 사진의 역사를 손이라는 주제로 묶은 기념비적 컬렉션이다. 그의 손 컬렉션은 2004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첫 선을 보인 뒤 2006년 러시아 모스크바 현대미술관, 2008년 플로리다 노턴미술관 등을 순회했다. 불의 손들이 아시아 처음으로 한국에 왔다. 이어 대만·중국·일본 등지를 거쳐갈 예정이다.

◆얼굴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우리 인류는 우리 미래의 희망을 어디에 기대야 할까요.” 원자폭탄이 터지고 3년 뒤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을 만난 사진가 유섭 카쉬(1908∼2002)가 물었다. “우리 스스로에게.” 아인슈타인은 슬프게, 담담하게 답했다. 그 순간 카쉬는 셔터를 눌렀다. 희망이나 절망 같은 감정의 차원을 넘어선 휴머니스트가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듯한 장면이었다.

아르메니아 출신으로 캐나다에서 사진관을 하던 카쉬는 1941년, 시거를 빼앗기고는 버럭 화를 내는 영국 수상 처칠을 향해 셔터를 누르면서 일약 스타가 됐다. 2차대전에 임하는 처칠과 영국의 의지를 보여주는 아이콘으로 그의 사진이 각 신문과 잡지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배우 오드리 헵번, 미국 대통령 부인 재클린 케네디, 첼리스트 파블로 카살스 등 20세기를 풍미한 스타·정치인·예술가 등 유명인들의 한 순간을 뷰파인더에 담았다. ‘인물사진의 거장, 카쉬’전에 나온 90여점의 크지 않은 사진 한 장에는 그들이 살아온 궤적이 담겨 있다.

두 전시의 공통점은 사람을 찍은 사진이라는 외에 출중한 컬렉터 헨리 불과 감각파 사진가 유섭 카쉬, 각기 한 인간의 집념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여러 손 사진 작품 뒤에는 모으는 손이자 나누는 손인 불의 손이 버티고 있다. 유명인들의 얼굴 속에는 카쉬의 시선이 담겨 있다. 전시를 조용히 보고 나온 당신, 거울 앞에 서자. 세월이, 인생이 당신의 손과 얼굴에 새긴 표정을 찬찬히 읽어보자.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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