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사건 파문] '의혹 풀 열쇠' 김천호씨 또 말 바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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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김선일씨의 유족이 27일 부산의료원에서 T셔츠 등 김선일씨의 유품을 공개했다. [부산=송봉근 기자]

수일 전 금명간 귀국하겠다던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이 말을 바꿨다. 26일 오후 바그다드 주재 한국대사관을 방문한 김 사장은 회사 사정상 당분간 귀국을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국민과 대사관에 너무 큰 충격과 피해를 줘 최대한 빨리 귀국해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싶지만 현 상황에서 조기 귀국은 어렵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주권이양을 전후해 치안상황이 극도로 악화되면서 추가적인 안전조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할 상황이 발생했다"며 "당장 한국으로 갈 형편이 아니다"고 말했다. 24일 시작된 저항세력.테러단체의 대공세로 이라크 전역이 혼란에 빠지고 있는 만큼 여러 곳에 산재해 있는 사업을 정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특히 현재 최대 규모의 교전이 발생하고 있는 곳이 팔루자 지역이어서 이곳 미군기지에 납품을 하고 있는 가나무역으로서는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아졌다고 한다.

또한 군납은 차질 없이 정기적으로 진행돼야 하기 때문에 납품로를 확보하고 안전을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김 사장을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는 요르단 암만 거주 지인들에 의하면 현재 그는 대사관에 보고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협상에 실패해 김선일씨가 비참하게 살해된 것에 대해 큰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지인들도 "위급한 현 이라크 상황을 내버려두고 김 사장이 잠시나마 한국으로 돌아가 지난 15여년 이상 중동땅에서 어렵게 일군 사업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사장이 조기 귀국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배경은 심리적 부담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김씨 피살과 관련해 국정조사가 진행되고 자신이 주요 증인으로 나서야 할 상황이 되자 귀국 거부 쪽으로 자세를 바꾼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바그다드와 암만의 일부 교민은 "무언가 숨겨야 할 대목이 있기 때문에 집중 조사를 피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대사관 측은 김 사장이 조기 귀국이 어렵다는 입장을 전하자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그가 대사관의 김씨 피랍 대응에 관련한 의혹을 풀어줄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23일간 대사관 측이 피랍 사실을 몰랐던 것은 김 사장이 쉬쉬하면서 독자적으로 협상을 진행했기 때문이라는 게 대사관 측의 주된 해명이다.

따라서 바그다드 대사관 측은 가능하면 김 사장을 계속 설득해 귀국을 종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 피살 사건 국정조사를 진행하려면 조사단의 이라크 현지 파견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암만=서정민 특파원
사진=송봉근 기자<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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