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사건 파문] "혹시 나?" 외교부 직원들 심리적 압박 시달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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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가 전화받았던 것 아닌가."

'실종 문의 전화'가 외교통상부 직원들을 불안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AP통신에서 실종 전화를 받고도 이를 묵살했다는 당사자가 자기인지를 놓고 외교부 직원들이 기억의 흔적을 뒤지고 있다. 교민 안전과 대언론 관계 담당 부서인 영사국.아중동국.공보관실이 그렇다. 이들은 자체 조사를 받은 데 이어 감사원의 정밀조사를 받게 된다.

외교부의 한 간부는 27일 "자기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나중에 통화 기록조사에서 당사자로 지목될까봐 담당 직원들은 극도의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다"면서 "관계 직원들은 흐릿한 기억이라도 무조건 진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부서 직원이 전화를 받았을까 하는 걱정에 해당 국장들 역시 초조하다. 한 국장은 "통화 기록을 확인해 보면 되는데 왜 KT 측이 거부하는지 모르겠다"며 "빨리 진실이 규명됐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외교부에 따르면 전화 통화로 진술서를 받은 직원은 모두 5명이다. 아중동국 사무관 두명, 공보관실 사무관 한명과 여직원 두명이다. 이들 중 네명의 진술은 압박 속에서 한 듯 혼란스럽다.

공보관실 여직원 두명은 "전화를 받은 것도 같다"고 했다가 "두어달 전인 것 같다"고 했다. 두달 전은 고 김선일씨 사건과는 무관하다. 아중동국 직원 한명은 "전화를 받았다면 동료 직원에게 물어봤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라크 업무를 맡은 동료 직원은 "문의받은 바 없다"고 진술서에 썼다.

외교부 내부에선 AP통신이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외교부 측은 직원들이 '한국인' '이라크' '실종'이라는 단어를 들었다면 현지 대사관 등에 문의조차 하지 않고 묵살했겠느냐는 반문도 한다. 또 AP 측이 이라크 현지 공관에 확인하지 않은 경위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최영진 차관도 "외신기자에게서 실종 문의 전화를 받았다는 공보관실 직원은 당시 '영사국.아중동국 같은 해당 부서에 문의해 봐라'고 얘기했다"고 강조했다. 비디오 테이프의 존재를 알리지 않은 AP 측이 실종 의혹을 우리 정부에 제대로 알렸는지, 성실한 확인에 나섰는지 따져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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