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종의 CEO 노트] 시장에 쏟아지는 M&A 매물 싸다고 물었다간 치명적 내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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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많은 기업이 새 성장동력을 확보하려고 인수합병(M&A)을 모색하고 있다. 이때 M&A는 양날의 칼과 같다는 걸 새삼 명심해야 한다. 잘못 쓰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힌다.

미국에 건너가 처음 세운 업체를 1991년 팔았을 때다. 매각 후에도 계약 조건에 따라 두 해를 최고경영자(CEO)로 일했는데도, 주인이 바뀌니 기업문화도 확 바뀌었다. 내부 통제에 틈이 생기면서 생산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를 막아보려고 애썼지만, 퇴진이 예정된 CEO로서 한계가 있었다.

두 번째 창업한 자일랜을 거래처인 세계적인 통신회사인 프랑스 알카텔에 99년 매각했을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알카텔은 자일랜을 통해 음성통신과 데이터통신을 접목해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올릴 걸로 기대했다. 하지만 막상 M&A 절차가 끝나자 알카텔은 뜻 밖의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았다. 자일랜의 많은 임직원은 스톡옵션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M&A로 적잖은 돈을 벌게 됐다. 목돈이 생기자 딴 맘이 생겼다. 핵심 엔지니어나 영업맨들이 더 큰 기회를 노리고 회사를 빠져나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더욱이 당시는 세계적인 정보기술(IT) 버블기 아니었던가. 뛰쳐나가 창업을 하면서 알짜배기 인력을 수십 명 빼 가는 임원도 있었다. 알카텔은 소송까지 불사했지만 후유증은 심각했다. 회사를 판 사람 입장에서도 예상치 못했지만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M&A가 성사돼도 이후 과정의 리스크가 크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경제위기가 깊어지면서 M&A 시장에 매물이 쏟아져 나온다. 경기가 좋을 땐 넘보기 힘든 기업들이 싼 값에 얼굴을 내민다. 사는 쪽에선 너무 서두르지 않는 게 좋다.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정으로 위험 요소들을 찬찬히 따져봐야 한다. 사실 고민거리가 별로 없는 회사가 매물로 나올 리 없다.

모름지기 기업의 경쟁력은 본업에서 찾는 것이 정도다. 위기를 밖에서 해소하려 하기보다 생산성과 효율을 높여 내부에서 해법을 찾는 게 우선이다. 그런 연후에도 M&A가 필요하다면 최악의 시나리오를 각오하고 덤벼야 한다. 가령 핵심인력이 몽땅 빠져나가는 상황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M&A를 하면 ‘1+1이 적어도 2 이상은 되겠지’ 하는 낙관은 순진하다. 물론 3이 될 수 있지만 1.5에 그치는 경우가 더 많다. 잭 웰치가 M&A로 오늘날의 GE를 이룩했다지만 모든 경영자나 기업이 다 잭 웰치나 GE처럼 될 수 있겠는가.

꿈·희망·미래재단 이사장 겸 SYK글로벌 대표

김윤종 (sykgloba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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