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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 아시아 디플레이션 조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빠른 경기회복을 기대하는 아시아국가들의 앞길에 디플레이션 (물가하락) 이라는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인플레이션에 익숙해진 지구촌 분위기에서 디플레이션은 단기적으로 소비자물가와 부동산값을 인하시키고 주식시장의 거품을 거두어내는 상당한 이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디플레이션이 계속되면 경제는 축소.후퇴의 국면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 최악의 예가 지난 1930년대의 '대공항' 이다.

상당수 경제학자들은 아시아가 바로 그런 악순환고리에 빠지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디플레이션의 진폭은 현재의 경기침체가 과속방지 턱이냐, 아니면 성장 장벽이냐를 결정할 것이다.

수출상품의 가격하락은 지금까지 일본 경제의 동맥경화증과 한국.중국의 성장률 둔화, 그리고 동남아 통화위기 및 홍콩의 주가폭락을 야기했다고 경제전문가들은 주장한다.

동아시아산 견직물.반도체.자동차등의 수출가격은 지난 96년초부터 빠르게 떨어져 올해 4%가량 하락할 전망이다.

반도체의 수출가격은 1년전보다 40%나 폭락했으며 중국산 산타나 승용차는 3년동안 절반가격으로 추락했다.

그럼에도 이들 국가들의 소비자물가는 서비스분야가 포함된 탓인지 아직 수출가격만큼 하락하지 않았다.

지난 94년 24%라는 물가상승률을 기록했던 중국만 거의 0%에 가까운 안정세로 반전됐을 뿐이다.

이같은 디플레이션 추세는 방콕부터 서울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전역의 자산가격에 포함된 거품을 빼도록 만들 가능성이 크다.

디플레이션은 올해 아시아국가들의 성장률을 급격하게 떨어뜨릴 것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실제 성장률이 이미 발표됐던 예측치들의 절반수준이 되리라는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앞으로의 진짜 문제는 미국과 유럽이 아시아의 저가 상품들을 흡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수입물가의 하락은 물가안정등에 도움이 되지만 가격인하및 통화가치 하락이 지금처럼 계속되면 디플레이션은 서구까지 몰아닥칠 수 있다.

워싱턴에 있는 미 기업연구소의 존 마킨 연구원은 "미국이 당분간 아시아의 값싼 수입제품에 힘입어 인플레없는 고성장을 지속하겠지만 아시아의 설비과잉문제는 결국 서구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 이라고 지적했다.

아시아에서 수년간 계속됐던 과잉투자와 이로 인한 과잉공급은 가격인하전쟁이라는 사태를 부르고 있다.

예컨대 한국.중국의 철강 생산능력은 미.영을 합친 것보다 많고 중국의 TV생산량은 전세계 생산량의 3분의1에 해당한다.

디플레이션 추세를 저지하기란 쉽지 않다.

중국은 지난 94년 미 달러에 대한 자국통화 가치를 35%나 절하시켰다.

이 조치는 인접 국가들로 하여금 자국 통화가치를 잇따라 낮추지 않을수 없게 만들었으며 현재의 디플레이션을 촉발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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