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구실 못하는 MCT 통화지표…돈 풀어도 금융권서 맴돌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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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한국은행이 돈을 넉넉히 공급하고 있다는데 통화량 증가율은 되레 떨어지고있다.

공장에서 물건이 대량으로 출하되고 있는데도 시장에서는 물건 구경 하기가 쉽지 않다는 신호가 나오고 있는 셈이다.

자금난을 호소하는 기업의 아우성 속에서 금리는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이상 (異狀) 현상도 함께 나타나고있다.

'통화지표가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은의 통화정책이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들린다.

시중에 돈이 얼마만큼 풀렸는지를 가늠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사용하고 있는 통화지표는 'MCT' 다.

지난해까지는 은행 바깥에서 유통되는 모든 현금에다 가계나 기업이 언제라도 현금화 할수 있는 요구불 예금, 그리고 정기예금처럼 덜 유동적인 저축성 예금을 포함하는 총통화 (M2) 를 사용했었다.

그런데 2~3년전부터 신탁부문이 크게 비대해져 M2로는 유동성의 크기와 변동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고 판단, M2 에다 양도성예금증서 (CD) 와 은행신탁부문을 합친 MCT를 지표로 삼기 시작했다.

◇ 돈이 풀리는데도 떨어지고 있는 MCT 증가율 = 연초에 한은은 통화량 공급 목표를 MCT기준으로 전년에 비해 17.5%증가하는 선에서 관리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지난 3분기의 MCT증가율은 14.7%였다.

1분기와 2분기에는 각각 18. 2%와 15.3%을 나타냈다.

목표범위에서 이탈,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은이 금융기관에 대한 자금지원을 대폭 늘리고 있는 이번달에도 이같은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한은은 지난 9월 제일은행에 1조원의 특별융자를 제공한데 이어 10월 16일에는 종금사에 같은 액수의 특융을 공급했다.

또 환매채 (RP) 를 사들이는 방법으로 4조5천억원을 풀었다.

그럼에도 MCT증가율은 계속 떨어져 10월30일 현재 13%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물론 한은이 금융기관에 대해 자금 공급을 한다고 해서 그만큼의 돈이 시중에 깔리게 되는 것은 아니다.

RP매입을 통해 푼 돈은 일정기간 뒤에 고스란히 한은으로 들어온다.

특융을 했을 경우에도 그 자체로는 은행의 지불준비금이 늘어나는 것에 불과하다.

은행의 지불준비금은 본원통화의 일부지만 M2나 MCT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금융기관은 특융에 대한 이자를 한은에 지불해야 하므로 이 돈을 굴려야 한다.

따라서 시간이 흐르면서 금융기관과 민간을 오가는 순환과정을 거쳐 MCT 증발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다.

한은 김원태 (金元泰) 자금담당 이사는 MCT증가율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것은 최근 RP와 표지어음을 초단기 상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MCT는 이 부문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자금이 CD나 신탁계정으로 몰려 M2보다 범위가 넓은 MCT를 사용했는데 이제 MCT 바깥에 있는 RP쪽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9월들어 CD 는 전월대비 2조8천억원 감소한 반면 RP는 1조1천억원이 늘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환율 급등을 막기위해 한은이 보유 외환을 팔고 있는 것도 통화환수 효과를 가져오게 되어 MCT증가율을 떨어뜨린다.

이달들어 이런 경로를 통해 1조5천억원 이상이 흡수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총통화 (M2) 증가율은 은행의 수시입출금식 고금리상품 (MMDA) 시판을 계기로 2금융권에서 돈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상승하기 시작, 7월말 17.8%에서 9월말 현재 20.3%에 이르는등 MCT와 엇갈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의 자금수요가 줄어든데다 금융권에서 대출을 꺼리는 바람에 지난달부터 M2증가율도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한은의 설명이다.

◇ 현실과 따로 노는 금리 = 기업체 자금난은 여전하지만 상대적으로 금리는 안정세다.

환율 폭등의 충격으로 다소 흔들렸지만 29일부터 장단기 금리 모두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하루짜리 콜금리는 지난 9월말 연 14.25%에서 지난달 29일 현재 연 13.36%로 0.89% 포인트 떨어졌고, 장기금리인 3년만기 회사채 수익률도 9월30일 연 12.6%였으나 29일 현재 12.63%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체감 자금사정과 현실의 금융지표가 왜 따로 노는가 하는 점. LG경제연구소 이인형 (李寅炯) 박사는 "콜금리 하락은 특융으로 풍부해진 금융기관의 자금사정을 반영하는 것" 이며 이 돈이 기업으로 흐르지 않으면 자금난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회사채 유통수익률이 급등하지 않는 것은 회사채 거래 자체가 초우량 대기업을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초우량 기업이 아니면 자금시장에 끼어들지를 못하고 있어 유통수익률이 안정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박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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