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가 남긴 숙제 <중> 뿌리 약한 유소년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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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지역보다 고교 야구팀 수가 적은 한국이 결승에 진출했다.”

22일(한국시간) 한국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결승전에서 베네수엘라를 꺾고 결승에 오르자 미국 LA 타임스는 이런 기사로 놀라움을 드러냈다.

실제 한국의 고교 야구팀 수는 53개에 불과하지만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에는 300개가량의 고교 야구팀이 있다. 미국 전체로는 한국의 190배인 1만 개에 달하고, 이웃 일본만 해도 고교 야구팀이 4100여 개로 한국의 77배에 이른다. 팀당 선수를 30명으로 보면 한국은 1600명, 일본은 12만 명, 미국은 30만 명으로 엄청난 격차가 난다.

한국이 올림픽과 WBC 무대에서 미국과 일본 등 야구 강국을 무너뜨린 것은 어찌 보면 기적 같은 일이다. WBC 준우승을 계기로 미래의 주역인 유소년 야구 육성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현재 국내 초등학교 야구팀은 98개, 리틀 야구팀은 80개에 불과하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우승 이후 야구를 지원하는 어린이들이 다소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야구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유소년 야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야구팀 운영비를 학부모에게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들어 한국야구위원회(KBO)와 프로 각 구단이 야구토토 수익금을 통해 장비 등을 지원하고는 있지만 다른 종목에 비해 돈이 많이 드는 야구를 꺼리는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 있다.

이희수 한국야구위원회(KBO) 육성위원장은 “요즘은 동문들의 지원도 거의 없어 학부모 돈으로 야구팀을 운영하고 있다”며 “정부나 체육 관련 단체에서 유소년 야구 지원에 좀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좀 더 편하게 야구를 관람할 수 있도록 기존 야구장 시설을 개선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올해로 출범 28년째를 맞은 한국 프로야구는 건립된 지 무려 60년이 넘은 야구장에서도 경기를 치르고 있다. 대구 구장이 1948년 완공된 것을 비롯, 광주와 대전구장 역시 65년에 지어져 40년을 훌쩍 넘었다. 3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구장도 잠실·사직·문학 등 세 곳에 불과하다.

비좁은 좌석과 지저분한 화장실, 잔디가 뭉텅뭉텅 뽑혀 나간 그라운드는 ‘세계 2위’ 야구 강국의 프로야구가 펼쳐지는 구장이라 하기엔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번 WBC에 참가한 대표팀 선수들도 일본 도쿄돔과 미국 샌디에이고 펫코파크, LA 다저스타디움에서 경기를 치르면서 “이런 구장에서라면 정말 야구할 맛이 난다”고 부러워했다. 그래서 많은 야구인은 “돔구장도 좋지만 기존 야구장의 시설을 하루 빨리 개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신화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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