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폭등·주가폭락…기업 극심한 '돈 가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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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환율폭등.주가폭락으로 기업의 해외차입이 사실상 중단되고 증자등 직접 금융도 차질이 빚어지면서 기업들의 자금 운용에 초비상이 걸렸다.

또 내년도 사업계획을 짜면서 당초 9백원대 초반으로 잡았던 내년 환율전망 (달러대비 원화값) 도 그룹에 따라 최고 달러당 1천원대까지 올려 수정하는등 급박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돈을 빌릴 곳이 없다" 는 것이 대기업 재무담당자들의 최근 공통된 푸념이다.

환율불안은 외화차입에, 주가폭락은 직접금융에 직격탄이 되면서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건실한 기업까지 부도에 몰릴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자금관련 상황을 하루에도 3~4차례 최고경영자에게 보고하면서 과장.부장 전결사항이던 자금관련 결제를 임원이나 최고경영자들이 직접 챙기는등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삼성.현대그룹 관계자는 31일 "최근에는 외국 돈을 빌리는게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불가능해진 실정" 이라고 말했다.

외국의 금융기관중 가장 우호적인 대답이 "좀더 지켜보자" 는 수준이고 상당수 외국 전주들은 신규대출은커녕 이미 빌려준 자금을 제때 갚을 수 있는지 챙기고 있다는 것. LG그룹 관계자도 "이례적으로 상환기일을 앞당겨달라는 요구까지 있다" 고 말했다.

대우전자는 92년 유럽에서 발행했던 4천만달러 규모의 해외전환사채를 이달 상환해야 하나 당시 달러당 7백80원이었던 환율이 최근 9백50원을 넘어서는 바람에 앉아서 80억원의 손실을 보게 됐다.

30대 그룹에 드는 H그룹 관계자는 "해외차입은 말도 붙여 볼 수 없어 요즘에는 아예 이를 포기한 상태" 라며 "산업은행에서 외화를 빌리는 것조차 곤란해졌다" 고 말했다.

아남그룹은 총외채 4억4천만달러중 올해말 상환액이 5천만달러에 이르고 있고 특히 미국업체와의 비메모리 합작사업을 위해 이미 해외에서 3천억원을 빌린데 이어 앞으로도 3천억원의 추가 차입이 필요해 고민이다.

쌍용정유 관계자는 "외국계 지점들에 자금 요청을 해도 기아까지 무너지는데 한국기업을 어떻게 믿느냐며 신규대출에 등을 돌리고 있다" 고 말했다.

금호그룹은 "해외에서 돈을 빌릴 때 현지 금융기관들이 국내 모기업 보증은 물론 국내 은행의 보증까지 요구하고 있는 실정" 이라고 말했다.

한편 그룹마다 내년 사업계획 재조정에 나선 가운데 LG그룹은 당초 8백80원으로 짰던 내년 사업계획상 환율을 내년말 기준 달러당 1천40원으로 잠정 수정중이다.

한솔그룹은 10월초 달러당 9백원으로 보고 짰던 내년 사업계획을 달러당 1천원으로 수정해 사업계획을 다시 짜고 있다.

민병관·이영렬·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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