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대선 스트레스 증후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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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로 죽이기식 난장판 대선정국 때문에 국민의 집단스트레스가 심각하다.

국민이 골초가 되고 술로 마음을 달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다.

'우리는 어디로 가나' 라는 탄식 속에 YS 5년의 공과를 따져야 할 여당마저 실종상태다.

국가대표 축구팀이 연전연승해 순간적으로 스트레스를 풀지만 대선정국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대선스트레스 증후군은 확산될 것이다.

이 스트레스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국민이 민주주의의 호기를 만들어 주면 정치가 망쳐놓아 오랫동안 축적된 정치스트레스다.

4.19를 5.16이 뒤엎고, 80년 '서울의 봄' 을 12.12가 뒤집었으며, 6월 시민항쟁의 승리도 군정 연장으로 귀결됐다.

'신한국' 을 공약한 YS개혁은 한보사태.김현철 비리사건후 경제위기와 사회 불안정을 극대화해 '부패공화국' 으로 전락했다.

그래서 정치스트레스가 쌓여 왔다.

유권자는 이번 대선이야말로 정치권이 처음으로 '시원한 꼴' 을 보여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정치가 기능을 상실하면 국가경영과 관리의 마비로 국가기능의 가동이 정지한다.

그래서 국민은 정치혐오증마저 느끼며 집단스트레스 증상을 나타낸다.

스포츠가 스트레스 해소작용을 하지만 일시적이다.

대선이 국민의 삶과 장래를 주제로 한 토론마당이 돼야 스트레스는 사라질 것이다.

오히려 정치권 자체가 스트레스 때문에 더 난리다.

그래서 유권자는 대선마당에서 소외돼 싸움 구경꾼으로 전락했다.

신한국당 이회창 (李會昌) 총재가 정권교체 스트레스, 국민신당 이인제 (李仁濟) 후보가 경선번복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면 DJ는 3金청산 스트레스를 받는다.

프랑스의 정치 원로 에드가 포르는 '선거때마다 집권당은 정권교체 스트레스, 야당은 정권연장 스트레스를 받게 마련' 이라면서 '국민 심판이 이를 해소한다' 고 말했다.

정권교체에 익숙한 선진국이 이러할진대 경험 한번 없는 후보들의 스트레스 강도를 미뤄 짐작할 만하다.

대선정국이 폭로 비방전으로 전락한 이유도 스트레스라고 말할 수 있다.

신한국당은 DJ의 선두 고수에 정적 (政敵) 만 보이고 주권자인 국민이 보이지 않는 듯하다.

경선 승리의 무기를 후보 분열에 직면해 2위 다툼에 소진해버렸다.

그리고 DJ비자금 폭로전을 감행한 결과 주류.비주류간 패거리 싸움에 휘말리더니 YS와 결별했다.

패거리 싸움의 늪에 빠진 나머지 집권당의 자기부정 (自己否定)에까지 나가버린 격이다.

여당 옷을 벗고 YS를 적 (敵) 으로 삼아 3金청산을 위한 '혁명론' 과 '성전 (聖戰)' 을 동원한 결과는 분당상황의 자초였다.

이 전략은 李후보 아들 병역문제가 유발한 인기하락 만회책이지만 유권자를 설득할 수 없었다.

李후보 지지세력이 3金청산에 맞지 않는 군정세력이 중심이고 게다가 '자기 허물' 을 덮었기 때문이다.

국민신당 李후보는 경선 번복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분위기다.

그의 탈당은 신한국당 분열의 원죄 (原罪) 임이 분명하지만 신한국당의 악수 (惡手)가 이를 정당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민주계의 반 (反) DJP 대안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그의 세대교체 간판은 'YS의 정치적 아들' 이라는 하자 (瑕疵) 때문에 설득력이 약하다.

곧 비주류가 합세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그의 모험은 분당에 의한 '정권 재창출 좌절' 이라는 위험을 안고 있다.

DJP 단일화가 DJ를 3金청산 스트레스에서 해방시켜줄지는 미지수다.

일단 대세잡기 조건을 충족시켰으나 비자금문제의 뇌관이 뽑힌 것은 아니다.

반DJP 정서를 앞세운 여권후보들의 막판 합종연횡과 연대노력도 만만치 않다.

내각제.권력 나누기식 연합정부 실험이 국민에게 설득력을 발휘할는지도 의문이다.

또 이것이 21세기에 적합한 권력구조인지는 앞으로 국민합의가 도출해야 할 사안이다.

대선후보들이 자동차 1천만대 시대에 소달구지식 권력싸움을 하는 데서 유권자의 스트레스는 쌓여만 간다.

결국 유권자의 한표가 12월18일 정치권의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스트레스 증후군이 풀릴지는 속단할 수 없다. 이것이 대선정국을 생산적 정책경쟁으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다.

대선후보들은 대통령이 권력싸움이 아니라 투표함에서 나온다는 진리를 망각한 것이 틀림없다.

주섭일<국제문제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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