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증권영업맨의 24시…끝없는 주가폭락 투자자들 거센 항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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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제는 바닥이 아닐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침대에서 일어났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폭락장세가 압축된 스프링처럼 튀어오를 가망이 없을 것같다.

간밤의 꿈엔 주가폭락에 거칠게 항의하는 고객들이 나타나 밤새 잠자리를 뒤척였다.

대우증권 인천 주안지점의 金모 (29) 대리는 생기넘치고 활기차야 할 아침을 이렇게 주눅이 든 상태로 시작한다.

지난 94년 1월 입사한 뒤 객장 영업을 4년째 하고 있지만 요즘처럼 어렵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다.

"평상시에는 주문이 30여건씩 밀려 장중 4시간이 빠듯했지만 요즘엔 주문이 10건 미만으로 격감해 한가합니다.

그러나 고객들의 애끓는 하소연과 엄포성 항의 때문에 없던 편두통까지 생겨났습니다."

오전8시부터 시작하는 영업회의는 직원들간에 우량종목 추천등의 정보교환은 사라진지 오래고 그날의 시황전망에 대한 설전도 없어졌다.

대신 과거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홍콩의 항생지수와 뉴욕의 다우존스지수는 물론이고 멀리 오스트리아의 올오더네리지수까지 챙겨보는 습관이 생겼다.

국내 증시가 실물경기외 어느덧 해외증시에 좌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전9시30분 金대리를 비롯한 영업직원들은 한가닥 희망을 걸고 시세전광판으로 눈을 돌린다.

다행히 이날은 주가가 반등세로 돌아섰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생각하면 어림도 없는 회복세다.

이미 하락세를 타기 시작한 지난 7월 종합주가지수 750선을 전후해 "이제는 상승기" 라며 적극적인 매입권유에 나섰지만 정작 주가는 이때부터 곤두박질치더니 28일엔 종합주가지수 500선마저 무너졌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보름사이 1백포인트 이상 빠지면서 담보부족 계좌가 속출해 반대매매를 통해 강제정리에 나서자 집 팔고 땅 팔아 부족 담보를 메운 고객들이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바람에 곤경에 빠진 직원들이 늘고 있다.

주변 동료들은 1천만원정도씩 자기 돈으로 배상해주는 것은 보통이다.

간혹 억대의 손실을 본 투자자의 성화에 못이겨 집을 팔아넘기는 직원도 적지 않다.

그도 2년전 "알아서 불려달라" 는 고객의 계좌관리를 맡았다가 손실이 발생해 1천만원을 물어준 적이 있다.

金대리는 이제 주가가 더이상 폭락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이다.

부천지점에선 영업직원들이 한 사람당 보통 50~60개 정도 관리하고 있으며 계좌당 투자금액은 2천만원에서 많게는 3억원에 달한다.

이중 10~15개 계좌가 주식매입대금의 60%까지 증권사로부터 빌린 신용계좌다.

주가가 하루빨리 회복되지 않으면 모두 반대매매에 나가기 때문에 "재산을 증식해준다" 며 주식매입을 권유했던게 자책감마저 느끼게 한다는 것이 金대리의 심경이다.

오후3시 장이 마감되지만 상승폭은 11.36포인트에 그치며 간신히 500선만 복구됐다.

장 마감회의에 들어갔지만 역시 침묵만 흘렀고 金대리는 "내 재산을 돌려달라" 는 고객들의 원성이 귓속 메아리로 들리는 가운데 무거운 발걸음으로 점포를 빠져나갔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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