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만난 DJ “당은 깨지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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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24일 동교동 사저를 찾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에게 “어떤 경우에도 당이 깨지거나 분열되는 모습을 보이면 국민이 실망한다”고 말한 것이 알려지면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 전 장관의 4·29 재·보선 전주 덕진 공천에 대해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의 담판을 앞둔 시점이어서 더욱 그랬다.

이날 자리는 “귀국 인사차 찾아 뵙겠다”는 정 전 장관의 요청으로 마련됐다. 부인 민혜경씨, 김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인 박지원 의원이 배석한 면담은 50분간 비공개로 진행됐다.

정 전 장관이 미국에서 개성공단 등 한반도 문제를 얘기했던 것을 소개하자 김 전 대통령은 “좋은 일 했다”고 덕담했다고 한다. 정 전 장관은 이어 “당에 들어가 열심히 당을 돕겠다”며 덕진 출마 결심을 전달했고, 김 전 대통령은 “당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출마 자체를 찬성하거나 반대하지는 않되 “어떠한 경우에도 분당은 안 된다”고 말했다고 박 의원이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22일 언론 인터뷰에서도 “민주당이 깨지면 공동 실패”라고 말했었다.

이에 정세균 대표 측 인사는 “무소속으로도 출마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라며 반겼다. 정 전 장관이 당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뜻을 내비쳐 현 민주당 지도부에 힘을 실어줬다는 것이다. 반면 정 전 장관 측 인사는 “당에 좋은 결과를 위해 정동영을 공천해야 한다는 의미일 수 있지 않나”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김 전 대통령이 ‘제3의 길’을 생각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지원 의원은 17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 전 장관은 당의 대통령 후보였고, 국정 경험을 갖춘 인사이므로 원내 진입이 필요하다”며 “당과 정 전 장관이 ‘윈윈’할 방법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이는 어느 쪽이든 일방적으로 손 들어주기 힘든 김 전 대통령의 심경과도 연결된다. 김 전 대통령은 용산참사 직후 “민주당이 잘하고 있다”고 하는 등 정세균 대표 체제 지지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본인이 대선을 앞둔 15대 공천 당시 영입했고, 92년 대선 패배 뒤 출국했다가 돌아온 자신의 처지와 닮은꼴인 정 전 장관에 대한 애정도 남아 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이 정 전 장관에게 ‘윈윈’ 방법을 제시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정 전 장관은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내일·모레 중으로 김원기 전 국회의장과 조세형 고문 등 당 원로들을 만나 뵐 생각”이라고 말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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