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향기] 하늘로 띄우는 '6월의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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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함께 있을 때 "우리도 여행이란 걸 한번 가보자" 할라치면, "가고 싶은데 다 생각해놔. 나중에 데려가 줄게" 하더니만 이제는 하늘로 떠난 남편 덕에 3개월에 한번씩, 왕복 8시간이 걸리는 여행을 하게 됩니다.

해병대 출신이었던 남편은 생을 마감하기 얼마 전 복무지였던 포항에 가고 싶어했는데, 여행이 여러 가지로 무리였던 상태라 결국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겨울이 막 문턱을 넘어설 때쯤 미안하단 말만 남긴 채 혼자 긴 여행을 떠났습니다.

현충일에 맞춰 딸애와 남편을 보러 갔습니다. 베트남 참전용사로 고엽제 판정을 받은 남편은 국립묘지인 임실 호국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힘든 고통도 다 잊은 채.

임실의 하늘은 참 파랗습니다. 6월의 신록은 눈이 부시다 못해 시립니다. 코팅 된 잎새 위에 쏟아지는 햇살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석이 되어 뒹굽니다.

남편 비석 앞에 담뱃불을 붙여 놓아주던 해병 전우회 아저씨들, 비석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리던 어떤 유가족, 우리의 아픔은 어느새 어우러져 공중을 떠돌다 흩어집니다. 남편을 보러 왔는데 그 모습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빈자리임을 새삼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 자꾸만 다리에 맥이 풀립니다.

차창 밖 들녘은 갓 모내기를 끝낸 어린 모들이, 아직 많이 힘든 듯 지친 듯 보입니다. 그래도 조금 일찍 모내기를 한 이웃 모들이 쉴새없이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힘내, 조금만 견뎌. 차츰 나아질 거야. 빨리 뿌리에다 힘을 줘."

사랑하는 이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많은 고엽제 후유의증 유가족분들. 후유의증은 연금이 승계되지 않습니다. 이토록 여러 가지 힘든 현실 속에서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정말 가끔씩은 하늘을 쳐다보고 싶습니다. 우리의 하늘이 얼마나 높고 푸른지.

그리고 부치지 못할 편지라도 띄우고 싶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당신은 떠난 게 아닙니다. 언제나 우리 곁에 살아있는 걸요. 결코 당신은 잊힌 게 아닙니다."

기차는 힘차게 목적지를 향해 달려갑니다. 서울로 점점. 서울로.

장언순 (48.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약대동 미래하이츠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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