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배제비골 부부 돕겠다” 줄 잇는 ‘따뜻한 마음’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3월 21일자 12면>

차 한잔을 마시고, 그는 15만원을 두고 떠났다. 제천에서 왔다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그에게 연락처라도 남겨 달라고 했지만, 살짝 웃을 뿐이었다.


15만원. 윤씨는 그 액수가 신기했다. 부부는 지난주 4만5000원짜리 책장 세 개를 샀다. 얼마 전에 붙박이 난로를 없애고, 그 자리에 애들을 위한 서재를 만들기로 했었다.

책장 산 돈 13만5000원. 오가며 쓴 돈까지 하면 15만원쯤 되겠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그만큼을 채워 줬다. 갈 곳 없는 아이들의 결핍, 결국은 우리가 채워 주라고 생긴 빈자리일지 모른다고 부부는 생각했다. ‘배제비골 부부’의 사연이 보도된 뒤 기자에게 여러 통의 e-메일이 왔다. “우리 아이들이 보던 책을 보내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책장은 샀지만 아직 칸은 채워지지 않았다. 빈 칸을 채워 주려고, 기사를 읽은 독자들이 책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귀로 듣지 않아도 부족한 부분을 알아채는 건, 따뜻한 이들의 사랑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텔레파시 아닐까. 반찬이라도 부쳐 주겠다는 거제도 분, 책을 싸놨으니 주소를 가르쳐 달라는 주부, 후원금을 보내주겠다는 미국 어느 대학에서 온 e-메일, 매달 1만원이라도 돕고 싶다는 연락. 그들의 마음은 봄처럼 따뜻했다.

지난해 가을 부부에게 세 자매가 왔다. 어린 세 자매는 고달픈 여정을 밟아 왔다. 자기를 낳은 엄마는 집을 나갔고, 아빠도 아이들을 키워 주지 못했다. 일곱 살 막내의 담임 선생님이 6일 부부에게 메모를 보냈다.

‘막내가 머리띠를 하고 와서 예뻤어요. 실은 입학식 날 남자 아이인 줄 알았어요. 자세히 보니 눈이 참 예쁩니다’.

세 자매는 변하고 있다. 아이들의 고달픈 여정이 끝나 가고 있다.

◆도와주시려면=기자에게 e-메일을 보내주시면 배제비골 부부의 연락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개인정보가 노출될 염려 때문이니 양해 바랍니다.

강인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