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메랄드 궁전의 추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죽었다…구요?”

1503호에 살던 사람이 누구였던가, 그것도 순간적으로 기억이 나질 않아서 나는 멍청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순간적인 의식의 공황 상태, 아니면 지나치게 확고한 현실감 때문에 오히려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아서였다.

1503호, 영우와 은미, 그리고 영우의 추락사 -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으며 그것들 사이에는 또한 무슨 연관성이 있다는 것일까. “사인은 추락사입니다.

같이 동거하는 여자가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시나요?” “그럼 영우가 자살을 했단 말인가요?” 출입문을 좀더 열고 안으로 들어오라는 시늉을 하며 나는 그에게 대답 대신 엉뚱한 물음을 되돌려주었다.

“지금으로선 그렇게 추정하고 있지만 일단 조사를 해 봐야죠. 동거를 하는 여자가 이 시간까지 나타나지 않는 것도 이상하고…그래서 주변 조사라도 먼저 해 두려고 이렇게 방문을 한 겁니다.

방해가 됐다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으로 들어선 그는 세심한 눈빛으로 실내를 한바퀴 휘둘러보았다.

그러고 나서 내가 권하는 대로 소파로 가 앉았다.

뭘 좀 마시겠느냐고 내가 건성으로 묻자 그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보이며 묻지도 않은 위궤양 얘기를 꺼냈다.

“만성 위궤양이라는데…이 시간만 되면 골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속이 쓰리고 아프거든요. 일종의 직업병이죠. ” 그의 말을 건성으로 들어넘기며 나는 냉장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마시다 남겨둔 위스키를 꺼내 병째 두어 모금을 마셨다.

그리고 잠시 멍청한 표정으로 서서 물끄러미 형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다소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그는 양복 상의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들었다.

“간단히 몇가지만 묻고 돌아가겠습니다.

불쾌하게 생각하시지 말고 아는 대로만 대답해주십쇼. 1503호에 사는 두 사람과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이였습니까?” 그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나는 묵묵히 그가 앉아 있는 소파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와 마주되게 앉고 나서 태연하게 담배를 피워물었다.

그러자 형사, 인내심을 발휘하는 표정으로 묵묵히 앉아서 나의 대답을 기다려 주었다.

하지만 나는 거의 오분 정도, 그러니까 담배 한대를 다 피울 동안 아무런 말도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오직 한마디의 말, 영우가 어제 아침에 나에게 남긴 마지막 말에 요지부동의 상태로 사로잡혀 있었을 뿐이었다.

- 선생님.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좀 있으신가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