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통분의 반인륜적 테러, 굴복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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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이라크 극렬 테러단체에 의해 납치됐던 김선일씨가 끝내 참혹한 모습으로 살해됐다. 비통한 일이다. 김씨의 무사귀환을 빌었던 국민의 충격과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김씨를 납치했던 이라크 저항단체는 김씨 살해의 이유로 한국군의 철군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무고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살해는 그 주장이 어떠한 것이든 절대로 합리화될 수 없다.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반인륜적 행위일 뿐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세계인과 함께 공분을 느끼며 강력히 규탄한다.

일부 시민단체와 정치인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 이라크 철군 및 추가파병을 재검토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김선일씨를 살해한 알자르카위 일파는 단순한 이라크 저항세력이 아니다. 이들은 인류문명에 대한 테러를 자행해 세계의 공적(公敵)이 된 빈 라덴과 마찬가지로, 이미 수십 차례의 테러행위를 자행한 악명높은 테러리스트 집단이다. 이들이 벌이는 테러는 어느 특정 국가.민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류문명 전체에 대한 위협이자 공격이다. 우리가 이런 테러리스트들의 무도한 협박과 만행에 굴복한다면 이는 인류가 수세기 동안 지켜오고 신장해온 자유와 평화를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 된다. 테러에 대한 굴복은 더 큰 테러를 부를 뿐이다.

이제 파병은 국제적 약속의 차원을 넘어섰다. 파병을 철회한다면 그건 테러에 대한 굴복이다. 우리는 테러리즘에 맞서 대다수 이라크인이 원하는 자유 이라크를 건설하고 평화롭고 안정된 이라크의 건설을 돕기 위해서라도 파병을 원래의 계획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밝힌 대로 "우리의 파병은 이라크와 아랍 국가에 적대 행위를 하려는 것이 아니며 이라크 복구와 재건을 돕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라크 현지에서 활동하는 서희.제마 부대가 이미 증명하듯 대다수 이라크인의 공감을 사고 한국과 아랍, 이슬람과의 유대를 더욱 증진시키고 있다. 정부가 파병고수 방침을 천명한 것은 당당하고 의연한 대응이다.

한국의 성장 경험은 평화롭고 번영된 자유 이라크 건설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한국으로선 지난 세기 세계에 빚진 부채를 갚는 길임과 동시에 종합적 국력을 상승시키고 국가위상을 높이는 기회가 될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의 반인륜적 행위가 우리를 통분케 하지만 그럴수록 냉정함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저들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이라크 전체 또는 이슬람으로 확대되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김씨를 납치.살해한 테러리스트들은 이라크인을 대변하거나 이슬람을 대표하는 세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다. 저들의 야만적 만행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대다수 이라크인의 바람 또한 안정되고 평화로운 자유 이라크를 염원할 뿐 한국인에 대한 테러에 공감하지 않는다. 테러리스트들은 반미 저항세력을 상징해 지하드(성전)를 벌이는 전사가 아니다. 평화의 이슬람을 테러리즘이라는 더러운 단어로 오염시킨 추악한 폭도들일 뿐이다.

테러에 대해선 단호하지만 이라크.아랍.이슬람에 대한 평상심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냉정하고도 성숙한 자세가 요구된다. 테러에 희생된 김씨의 명복을 빌며, 김씨 가족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