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선희 비디오파일]영화광 이야기 4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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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크고 작은 영화제가 어어져 영화광들로서는 바쁘고 신나는 97년으로 기억될 것 같다.

돈과 시간, 체력만 뒷받침 된다면 하루 서너편씩 수준 높은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낼수 있다.

그러나 시시한 영화를 보며 거꾸로 현실을 시시하고 힘겨운 것으로 전락시키는 맹목적인 많이 보기라면 어리석은 짓이다.

영화에 빠져 현실과 영화를 구분하지 못하는 영화광에 관한 영화는 모두 일급 수준이다.

베리 레빈슨 감독은 배우 조 페시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미 헐리우드' (CIC) 로 영화에 빠진 삼류인생을 조크한다.

존 맥티어넌 감독은 '마지막 액션 히어로' (콜롬비아)에서 영화세계로 빠져드는 기쁨을 마법에 비유한다.

이 두편은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는 밝은 구원의 일면이 있지만 다음의 두 편은 영화에 빠져 목숨까지 잃는 무서운 영화광 이야기다.

물론 이 두편을 골수 영화팬들은 더 좋아할 것이고, 내가 왜 진작 이런 영화 생각을 못했을까 탄식할 만큼 아이디어가 빛나는 젊은 감독의 저예산 영화다.

데이비드 웨링턴 감독의 '크라임 웨이브' (드림박스) 의 주인공 (톰 맥카머스) 의 직업은 은행원. 그러나 그의 진짜 꿈은 배우고, 그것도 유니폼이 멋진 경관 노릇을 영화 속에서는 물론 현실에서도 제대로 해내는 것이다.

현실의 부조리를 극복하지 못해 영화의상인 경찰복을 입고 쓰레기 같은 인간들을 소탕하겠다고 나서는 청년의 비극이 누아르풍으로 그려진다.

새머 다볼 감독의 '위험한 쾌락' (영성) 의 주인공 (팀 퀼) 은 건전기사를 써야하는 아동잡지 기자다.

그는 무관심한 부모대신 TV와 영화를 친구로 삼으며 성장했고, 이제는 지겨운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청부업자에게 나를 죽여달라고 부탁하는 경지에 이르고만다.

옥선희 <비디오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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