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자전거 생활권 국가’ 꿈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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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인류의 출현 이래 오늘의 발전이 있기까지 가장 크게 기여한 두 가지가 있다면 불의 발견과 바퀴의 발명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불의 발견이 인류의 의식주 전반에 걸쳐 방향과 사고의 전환을 가져왔다면, 바퀴의 발명은 거리와 무게에 제약되던 인류의 활동 영역을 무한대로 확장시킨 것이다. 바퀴는 거의 모든 생활 영역에서 응용되며 수많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 인류 발전에 기여했고, 그중의 하나가 최근 들어 녹색성장 전략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자전거다.

자전거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존재며 아이들을 어른으로 만들어 주던 하나의 성장 도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 아이들은 돌 무렵이면 혼자 힘으로 발걸음을 뗄 수 있게 되고, 조금 더 자라면 태어나 처음으로 접하는 놀이 겸 이동 수단이 바로 자전거다. 비록 바퀴가 세 개고 체인도 없는 세발자전거이지만 그것 위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보았던 세상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자전거의 안장 높이만큼 세상을 보는 눈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이렇듯 어릴 적부터 친숙했던 자전거가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생활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교통수단이 다양해지고 이동거리가 늘어난 탓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전거를 가까이 할 수 있는 문화와 여건이 미흡했던 탓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비약적인 경제성장은 마이카 시대라는 꿈 같은 현실을 만들어 냈다. 사람들은 기름을 물 쓰듯 써 대며 탄소로 대변되는 각종 유해물질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한가. 거리는 혼잡해지고 교통 체증으로 유발되는 엄청난 손실은 고스란히 우리가 부담해야 한다. 또 금액으로 환산할 수조차 없는 환경적 피해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정보화로 대변되던 ‘제3의 물결’에 이어 ‘제4의 물결’은 바이오·지놈·우주, 그리고 환경과 기후의 혁명이라고 말했다. 그중 환경과 기후의 혁명을 위해선 저이산화탄소 녹색성장이 필수적이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녹색뉴딜 사업’이 대표적인 예다. 4대 강 살리기로 대표되는 이 사업이 완성되면 아름다운 강을 따라 1297㎞의 자전거 도로 벨트가 형성돼 우리의 경제·문화·환경 전반에 걸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자전거는 고유가 및 기후변화 등 환경 문제 대응을 위한 중요 대체 교통수단이며 이산화탄소 배출과 환경 오염이 없는 친환경 이동수단이기 때문이다.

때마침 정부와 여러 지자체가 구상 중인 도심 자전거 전용도로 사업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머지않아 4대 강 주변과 더불어 자전거 인프라가 구축되고 전국적인 자전거 타기의 열풍이 확산된다면 우리나라도 자전거로 출퇴근과 장보기 등이 가능한 진정한 ‘자전거 생활권 국가’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또한 서구의 예에서 보듯 자전거를 공공의 재산으로 공유하는 ‘자전거 공공사업’은 교통비나 유류비 절감 등을 통해 모든 계층이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삶이 지나치게 빠르다고 생각하면 페달을 밟자. 우리 아이들에게 숨쉴 공기를 주고 싶다면 페달을 밟자.” 자전거 천국으로 알려진 네덜란드 남부의 델프트시가 내세웠던 이 구호는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녹색뉴딜 사업을 통해 1297㎞의 자전거 도로가, 도심의 자전거 전용도로가 완성되면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

김주훈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