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박물관 1호 보물 ③ 호림박물관 백자청화매죽문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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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국보 제222호. 높이 29.2㎝, 구경 10.8㎝, 저경 14.0㎝.

순백의 백자 위에 푸른 선필로 그려진 격조 높은 회화. 조선 백자에는 맑고 청렴하게 살고자 했던 양반들의 미학과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안을 파고들면 미를 추구하는 사대부들의 욕망도 스며 있었다. 당시 중국을 거쳐 수입된 페르시아산 회회청(코발트 물감)은 금과 바꿀 정도로 비쌌다. 청화백자는 조선 초기만 해도 왕실이나 몇몇 권세가에서만 쓸 수 있었지만 그 유행은 날로 번져갔다. 사치 풍조를 염려한 조정에서 청화백자 사용 금지령을 수차례 내릴 정도였다.

중국의 청화백자는 문양이 복잡하고 화려하다. 조선 초기의 청화백자는 한때 그 영향을 받아 다소 난삽한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호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백자청화매죽문호(白磁靑華梅竹文壺)는 중국 기호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한 조선 전기의 걸작으로 꼽힌다. 이 작품은 뚜껑까지 온전히 갖춰 가치가 더 높다. 조선 왕실용 백자를 생산하던 광주(廣州) 관요(官窯)에서 제작하고, 궁중 소속 도화서 화원이 매죽문을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화안료는 워낙 귀한 물감이었기에 도자공이 아닌, 당대 최고의 화가가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눈부시게 흰 백색의 곡면 위로 뻗은 푸른 매죽문은 힘차고 간결하면서도 나무의 질감과 농담을 잘 드러내고 있다. 매화가지 끝의 꽃은 봄을 알리는 깊은 향을 뿜어내는 듯하다.

이경희 기자

◆호림박물관(www.horimmuseum.org)=1982년 호림(湖林) 윤장섭(尹章燮) 선생이 출연한 기금과 유물을 바탕으로 서울 대치동에서 개관했다. 국보 8점, 보물 46점을 포함한 문화재 1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96년 서울 관악구 신림동으로 이전한 데 이어 5월 서울 신사동 호림아트센터에 분관을 연다. 02-858-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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