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여석사, PC통신 사랑 결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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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영화에서 주인공이 '만나야 할 사람은 꼭 다시 만난다' 고 했을 때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어요. 3년전 제가 매일 밤 그런 다짐을 했었거든요. " PC통신을 통해 만난 남녀가 운명의 엇갈림을 극복하고 결국 사랑을 이룬다는게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접속' 의 줄거리지만 PC통신을 통해 결실을 본 한 장애인부부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장애인 편의시설촉진 시민모임' 사무국장 배융호 (裵隆昊.32.서울도봉구창1동) 씨와 부인 전정옥 (田正玉.35) 씨 부부. 남편 裵씨는 유아시절 뼈가 잇따라 부러지면서 성장을 멈추는 희귀한 질병인 '골형성부전증' 에 걸려 1m도 안되는 키에 휠체어에 의존해 생활하며 잘해야 20년밖에 살 수 없는 시한부 삶의 선천성 장애인이다.

부인 田씨는 이화여대 특수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에서 교육심리학을 전공한 재원 (才媛) .보통사람의 눈으로 보면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다.

이들이 서로 알게된 것은 94년 여름. 장애인 복지운동에 나선 裵씨가 PC통신 나우누리에 개설한 장애인동호회 '나누리' 에 田씨가 가입한 것이 계기였다.

모니터를 통해 인사를 나눈 두사람은 그뒤 하루에도 몇통씩 전자메일을 주고받았고 나중에는 밤새워 채팅을 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장미꽃 그림의 전자메일을 보내는 장면을 보며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어요. 이이가 제게 프로포즈를 바로 그렇게 했거든요. " 그해 11월. 裵씨는 심야 채팅중 청혼했고 田씨는 裵씨의 '순수한 영혼' 을 믿는다며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남편과 사별하고 딸을 애지중지 키워온 홀어머니는 "시한부인생의 장애인에게 시집보낼 수 없다" 며 완강하게 반대했다.

나중에는 "차라리 나를 죽이고 결혼하라" 고 버티자 좌절한 田씨는 영화 '접속' 의 주인공처럼 호주로 떠나버렸다.

얼마후 裵씨가 호주로 찾아가 눈물속에 재회한 두 사람이 함께 귀국하자 田씨의 어머니도 어쩔 수 없다는듯 결혼을 승낙했다.

지난해 4월 결혼식장에서 裵씨의 부모는 "내딸이었더라도 결코 시집보내지 않았을 것" 이라며 사돈인 田씨의 어머니에게 눈물을 흘리며 큰절을 올렸다.

"사랑의 힘은 무엇보다 위대하다고 믿습니다.

PC통신이 저희의 사랑을 지켜줬고요. 이제 장애인들에게 더 많은 세상의 사랑을 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역경을 딛고 사랑 접속에 성공한 裵씨 부부의 다짐이다.

최재희·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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