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애호가들, 문화체험 나섰다 ‘희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예멘 폭발사고로 한국인 4명이 숨졌다. 사망자는 모두 장·노년의 여행 애호가들이었다. 한날 한시 함께 생을 마감한 고(故) 주용철(59)·신혜운(55) 부부는 알토란 부자로 소문났지만 검소했다. 20여 년간 부동산중개업을 하며 서울 강동구 일대에 수십 채의 아파트와 상가를 소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부는 줄곧 마티즈 차량을 타고 다니다 최근 SM5를 구입했다. 이웃의 김모(61·여)씨는 “신씨는 항상 얇은 싸구려 신발을 신고 다녔다. 한번은 내가 30만원 하는 마사이워킹 신발을 샀더니 ‘비싸다’며 놀라더라”고 말했다.

자식이 없는 이들 부부에게 여행은 유일한 낙이었다. 중국에만 30번 이상 다녀왔고 1년 중 외국에 머무를 때가 더 오래일 정도로 여행을 좋아했다. 예멘 여행 직전엔 유럽 눈꽃 축제를 다녀왔다.

김인혜(64·여)씨는 부상당한 현지 가이드 손종희씨의 권유로 예멘행에 올랐다가 변을 당했다. 김씨는 평소 이란·이라크·남미·이집트 등 제3세계 국가들을 자주 여행했는데 여행 도중 손씨와 친해졌다. 남편인 윤모(64)씨는 “아내는 별 일 있겠느냐며 휴대전화도 놓고 갔다. 평소처럼 공항에서 웃으며 헤어졌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며 북받치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사망자 중 최고령인 박봉간(70)씨는 광주MBC 보도국장과 언론중재위원을 지낸 전직 언론인이다. 사고 소식을 듣고 박씨의 집에 달려온 그의 형수는 “평소 여행 다니는 낙으로 사셨는데…”라며 침통해했다.

이들을 인솔한 ‘테마세이’ 여행사 측은 “14일 오후(현지시간) 시밤을 여행한 일행이 다음 날에도 ‘어제 봤던 시밤 일몰이 너무 좋아 다시 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계획을 변경해 다시 시밤을 찾았다가 사고가 났다”고 밝혔다. 또 “종교적 목적이 아닌 단순한 문화체험 여행이었다”며 “시밤은 예멘에서도 치안이 가장 확실한 곳이라 사고가 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스더·정선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