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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이 보쌈·삼겹살에 향을 맞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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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보쌈에는 알코올 도수가 다소 높은 ‘마리아주 샤르도네’ 화이트 와인(左)이 어울린다. 잡채에는 지중해 남부가 주산지인 그르나쉬 품종의 로제 와인이 찰떡 궁합으로 꼽혔다.

 구워서 마늘·풋고추·된장과 함께 상추에 싸먹는 삽겹살, 삶은 돼지고기에 김치를 곁들이는 보쌈, 굴과 파를 넣어 지져내는 해물파전…. 한국인이 술자리에서 즐겨먹는 대표 음식이다.

이런 음식엔 소주나 맥주를 마시는 게 일반적이다. 한식과 와인을 함께하는 이가 늘었지만, 아직도 썩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한식에는 맛이 강한 간장·고추장을 넣어 굽고 볶고 끓이는 음식이 많기 때문이다.

신세계 이마트가 요리·와인 전문가와 손잡고 한식과 궁합이 맞는 ‘마리아주(Mariage) 와인’을 개발했다고 15일 밝혔다. 마리아주는 결혼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와인과 음식이 서로 잘 어울리는 것을 뜻한다. 기존 와인이 어떤 한식과 맞는지 소개하는 경우는 많지만, 한식에 적합한 와인을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4월 이마트 신근중 와인 바이어와 이종임 요리조리 음식문화연구소장, 손진호 중앙대 산업교육원 와인전문과정 주임교수가 머리를 맞댔다. 최근 별세한 요리연구가 하선정씨의 조카이기도 한 이 원장이 불고기·삼겹살 구이·보쌈·해물파전·잡채의 5가지 한식을 골라 재료와 조리법이 담긴 레시피를 작성했다. 이어 와인전문가인 손 교수가 음식별 풍미를 감안해 포도 품종과 당도·산도 등 적합한 와인스타일을 제안했다.

이마트는 이를 들고 각국 와이너리(와인업체)에 상품 개발을 의뢰했다. 수차례에 걸친 테이스팅(시음)을 통해 호주 최대 와인 산지 중 하나인 바로사밸리의 ‘그랜트 버지 와인즈’ 와이너리를 생산자로 정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 호주로 건너가 현지에 한식을 만들어놓고 와이너리가 만든 다양한 와인을 시음하며 다섯 가지 음식에 각각 어울리는 다섯 가지 와인을 골랐다. 이들 맞춤형 와인엔 아예 ‘마리아주’라는 이름을 붙였다. 레이블도 국내 디자이너가 도안했다. 병 뒷면엔 어울리는 각각의 음식 사진도 담았다.

이마트는 마리아주 와인을 16일부터 서울 지역 점포에서 판매한다. 가격은 1만9900원. 이 소장은 “전문가들이 참여해 우리 음식에 적합한 와인을 만든 만큼 소비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며 “와인 개발이 이어지면 한식의 국제화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식과 와인, 어떻게 짝지었나=불고기는 간장이 들어가면서도 달콤한 맛이 난다. 간장 맛을 견뎌내도록 포도 품종은 쉬라즈를 고르고, 단맛이 과하면 느끼해질 수 있는 만큼 산도를 높이고 드라이하게 만들었다. 버섯이 많이 들어갈 경우를 고려해 흙냄새가 약간 나는 숙성된 와인이 좋겠다는 의견도 반영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마리아주 쉬라즈’ 레드와인이다.

삽겹살 구이는 입안 가득 느껴지는 지방의 풍미와 기름기를 고려해 탄닌이 풍부하고 알코올 도수가 다소 높도록 조절했다. 굽기 때문에 오크 숙성 와인이 잘 어울릴 것으로 봤다. ‘마리아주 카베르네 소비뇽’이 나왔다.

보쌈은 수육에 파·김치 등 매운 맛 야채를 곁들여 먹는 데다 노린내를 이겨낼 수 있어야 했다. 알코올 도수가 다소 높은 ‘마리아주 샤르도네’ 화이트 와인이 찰떡 궁합으로 꼽혔다.

해물파전은 구수한 굴의 맛과 파의 매큼한 향에 모두 적합한 와인이 필요했다. 독일이 주산지인 리슬링 품종의 화이트 와인이 제조됐다. 짭짤한 간장과 고소한 참기름, 약간 매운 고추·피망까지 들어간 잡채를 위해선 지중해 남부에서 주로 재배되는 그르나쉬 품종의 로제 와인이 개발됐다.

손 교수는 “사람에 따라 입맛이 달라 정형화하긴 어렵지만 한식과 와인의 마리아주 답안을 만들어봤다”며 “포도밭 위치가 좋고 철학을 가진 와이너리에서 만들어 품질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이마트는 한식에 맞는 다양한 스타일과 품종의 와인을 추가로 개발할 계획이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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