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차이나 1백일]"돈많고 영어잘하고 힘있어야 홍콩서 민주화 시위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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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첫째, 돈이 많을 것.

둘째, 캔토니즈는 물론 영어와 만다린도 잘 할 것. 셋째, 힘도 세야될 것.

사원모집 광고가 아니다.

홍콩의 주권 회복 1백일에 즈음 홍콩의 시위자들이 새로 갖춰야될 조건들이다.

예전처럼 피켓만 들고 거리를 누비며 소리를 지르던 시대는 지났다.

중국속의 홍콩이란 새 시대에 맞는 새 시위전략 마련에 홍콩의 민주파 인사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당초 주권 회복후엔 용기가 가장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같은 예상은 빗나갔다.

지난 9월말 홍콩에서 개최된 세계은행 연차총회에서 홍콩 민주인사들은 '타도 리펑 (李鵬) 총리' 를 외쳤다.

아무 탈이 없었다.

문제는 일련의 시위가 자신들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선 지난달 21일 주권 이양후 경찰과 첫 충돌한 시위에서 5명이 체포됐다.

경찰 바리케이드를 돌파하다 붙잡혔다.

이들은 각기 1천홍콩달러 (약 11만5천원) 를 내고 보석으로 풀려났다.

있는 사람들에겐 작은돈일지 몰라도 시위가 주업인 민주 인사들에겐 큰돈이었다.

또 다음날인 22일 시위에서 이들은 홍콩 사투리인 캔토니즈는 물론 만다린과 영어등 세가지 말로 '타도 리펑' 을 외치느라 큰 고생을 했다.

캔토니즈야 홍콩인들에게만 효과가 있어 회의에 참석한 외국인들을 위해 영어로, 또 당사자인 李총리등 중국 관원들이 알아 들을 수 있도록 만다린도 동원, 시위 구호를 3개 언어로 외치자니 구호 통일도 잘 안돼 애를 먹었다.

이어 23일의 시위에선 15명의 시위자가 2백명의 경찰에 포위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무려 13배가 넘는 경찰에 파묻혀 시위 아닌 시위가 돼버렸다.

용기를 냈던 주권 회복 후의 반중국 첫 시위는 이렇게 맥없이 끝나버렸다.

그러나 민주인사들을 더 약오르게 한 것은 이들이 고생하며 벌인 시위가 오히려 중국당국의 '홍콩은 변함없다' 는 선전에 이용됐다는 점이다.

개막연설에 나선 李총리는 회의장 바깥의 홍콩 시위대를 가리켜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고 말했다.

주권 회복 후에도 달라진게 없다는 생생한 증거로 홍콩시위가 보기좋게 역이용된 것이다.

홍콩 = 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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