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살아있다]세계추세 못따르는 '한국어보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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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한국어의 국제보급을 목표로 창업한지 올해로 34년째. 창업 첫해에 'Let's learn Korean (한국어를 배웁시다)' 을 레코드판으로 제작했으나 지금은 카세트 테이프로 대체했으니 그만큼 시간이 많이 흐른 모양이다.

그동안 나온 한국학 해외판 도서는 1백50여종. 한국어 관련서도 5개 언어권에 40여종에 이르며 연간 10여만권 이상이 각국 지사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

또한 한국어가 우리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미국의 대입적성시험 (SAT)에서 선택과목으로 추가되고 일본 고등학교에서도 제2외국어로 선택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그 수요 또한 더욱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이같은 흐름에 맞춰 국내에서도 당연히 수준 높은 한국어교재가 개발돼 외국의 필요한 독자가 손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독자층 구분.난이도.학습 영역.발음 표기 등 교재개발에 필요한 깊이 있는 연구가 아쉬운 형편이다.

게다가 이러한 교재 연구를 부추기고 교사를 이끌어갈 권위 있는 주체가 유명무실한 상태다.

그나마 희망적인 부분은 '상품의 수출도 문화를 통하여' 란 인식이 높아져 몇몇 기업에서 연구기금을 기탁하고 있다는 점. 반면 외국 현지의 교육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고 독자적인 보급망을 갖추고 있는 전문출판사와 손을 잡는 일은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연구기관에서 아무리 좋은 책을 내놓더라도 보급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한국어의 세계화는 한낱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어의 보급이 아직 초기단계인 만큼 앞으로는 뜻있는 정부기관과 기업, 그리고 출판사들이 협력해 삼박자를 맞춰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 보급작업이 각국의 교육기관과 일반서점을 대상으로 동시에 이뤄져야 알찬 열매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의 저명출판사가 한국어교재를 1만부 구입하겠다는 뜻을 비쳤었다.

그러나 구매가의 8배에 가까운 정가로 팔겠다고 해서 계약을 보류했다.

일본독자들이 보다 저렴한 가격에 책을 보게 하려는 판단에서였다.

한국어 보급체계가 잘 갖춰있으면 물론 이런 제의조차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함기만 <한림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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