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경기 부양은 조연 … 시장이 주연 배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1970년대 이래 최악의 침체기입니다. 올해 말까지 턴어라운드를 기대하기는 무척 힘듭니다. 금융 부문이 건강을 되찾는다는 조건 아래 내년에나 경기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글렌 허버드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장. 그는 미국 내 일각에서 나타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에 대해 강한 톤으로 비판했다. [심재우 기자]

글렌 허버드(51)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미국 내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경영대학원(MBA)을 이끌고 있고,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에게 경제 조언을 해 준 경제전문가지만, 그에게도 경기 예측은 쉽지 않은 듯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금융 부문의 ‘건강(Health)’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금융이 건강을 되찾아야 국가 간 무역이 살아나고, 결과적으로 경기 회복 사이클로 진입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11일 서울 신촌의 연세대 학술정보관에서 그를 만났다. KDI와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이 공동으로 마련한 ‘사회적 기업 국제 콘퍼런스 2009’에서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방한했다.

다음은 허버드 박사와의 일문일답.

-한국의 외환보유액을 의심하는 외신이 자주 뜬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른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이 다시 국제통화기금(IMF)의 도움을 받는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이번에 발생한 문제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 촉발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조가 전통적으로 매우 강성이라는 사실은 미국 월가에서도 잘 알고 있지만 최근 노조가 유연하게 바뀌는 상황 또한 잘 인식하고 있다. 원화가 다소 약세인 것은 사실이지만 나 같은 여행자에게는 크게 도움이 된다.”(웃음)

-미국 자동차 빅3(GM·포드·크라이슬러)가 무너지면서 엄청난 구제금융이 투입됐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국 정부가 나서서 시장을 살리는 일이다. 도요타와 현대차는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빅3는 경영에 실패했다. 인건비 비중이 너무 높았다. 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지원되는 구제금융은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 보자는 취지인 만큼 국부를 낭비하는 게 아니다. 필요한 작업이다.”

-한국 정부 또한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준비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정부가 나서서 내수 진작 등 경기 부양책을 쓰는 것은 일반적이다. 한국의 경기 부양책에 들어가는 예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가장 중요한 사항은 금융 부문이 건강한지 따져보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 고려할 사항은 경기 부양을 위한 자극은 그야말로 자극으로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 부양책이 주연 배우가 돼선 곤란하다. 그 다음엔 시장에 맡겨야 한다.”

-오바마 정부 이후 미국 내에서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미국 내에서 의견이 엇갈리는 것 같다.

“실제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선다면 거꾸로 가는 행위다. 우리 같은 전문가들은 (보호무역주의는)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한·미 FTA는 미국에 도움을 주는 것이고, 보호무역주의는 미국에 해악을 가져오며 굉장히 파괴적인 요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전파하고 있다. 론 커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지명자가 미 의회에서 한·미 FTA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보도를 봤다. 내 생각에는 한·미 FTA를 완전 부정한다기보다 약간의 간극이 있다는 정도로 보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의회를 설득하고 조율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금융위기 이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한 덕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맞다. 컬럼비아대 MBA 과정에서도 전인격적인 리더를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단순히 상품을 이른 시간 내 팔아치우는 방법을 교육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고객 중심에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지나친 인센티브 시스템이 이를 방조한 측면이 있다. 인센티브를 얻어내기 위해 장기적으로 고객 중심에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단기간 실적을 쌓는 데 급급했다. 리더십의 실패다. 이를 바꾸기 위해선 보상과 유인체계가 달라져야 한다. 단기 실적 위주의 보상 시스템에서 장기적인 투자가 가능하게 바뀌어 가길 기대한다.”

-한국은 인위적인 구조조정보다 잡 셰어링(일자리 나누기)으로 위기를 극복하려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잡 셰어링보다 사회적인 안전망을 강화하고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해 시장이 다이내믹한 생기를 유지하게 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본다.”

심재우 기자

글렌 허버드는
부시 대통령 때 경제자문위 의장 … 감세 주도

글렌 허버드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장은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의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을 지내며 부시 행정부의 감세정책을 주도했다.

부시 행정부에서 한때 연방준비은행(FRB) 의장 후보로 거론됐다. 플로리다주 올랜도 출신으로, 센트럴 플로리다 대학을 졸업한 뒤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마틴 펠드스타인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이후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과 시카고대를 거쳐 1988년 컬럼비아대에 둥지를 텄다. 2004년부터 이 대학의 경영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91년부터 2년간 미국 재무차관보로 재직하면서 교수는 물론 재무관료로서도 뛰어난 업적을 인정받았다. 국가 경제조사국 근무 때 통화정책과 공공경제·기업금융·산업조직·의료보험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정책을 입안했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경제통으로 인정받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다국적 기업에 대한 과세 효과』(1995), 『건강, 부, 그리고 지혜』(2005), 『경제학 원리』(2006) 등이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