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사태 장기화…금융시장 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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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기아그룹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이 다시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자금시장은 기아가 화의를 신청한 지난주부터 이미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루짜리 콜금리는 은행들의 몸사리기로 돈이 돌지 않아 연일 연중 최고치를 경신, 27일에는 연 14.60%를 기록했다.

3년 만기 회사채 유통수익률도 금융대란설이 나돌던 지난 4월17일 이후 최고치인 연 12.55%를 나타냈다.

지난 27일 각각 13.7%, 연 14.19%를 기록한 양도성예금증서 (CD) 와 기업어음 (CP) 금리도 주요 매입처인 은행이 머뭇거리고 있어 추가상승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돈의 유통속도가 느려지는 것과 동시에 거래행태도 극도로 보수화하고 있다는 진단 (동양종금 南宮薰 자금부 차장) 이다.

은행등 금융기관이 극도로 몸을 사리기 시작한 것은 기아 쇼크가 해결 실마리를 찾지 못한채 힘겨루기 양상으로 변해가는등 장기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우선 기아사태가 법정관리나 화의중 어느 쪽으로 결말이 나든지 간에 연말에 최소 2조5천억원대의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은행들은 현재 기아에 3조6천억원대의 여신을 제공하고 있지만 담보는 2천5백억원 수준에 불과, 엄청난 손실을 감소해야 한다.

따라서 자금운용에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상대적으로 은행보다 자기자본 규모가 작은 종합금융회사의 사정은 더 절박하다.

기아에 대출한 총 3조9천5백억원이 장기간 묶이면서 유동성 위기가 몰아닥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기아에 대한 여신만 종금사 전체 자기자본 (3조9천7백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부실채권이 자기자본을 넘어서는 종금사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를 넘기기 힘들 것으로 예상되는 종금사 리스트도 나돌고 있는 정도다.

더 심각한 문제는 종금사등 금융기관이 부도위기에 직면할 경우 이들의 자금회수도 가속화될 것이라는 점에 있다.

이때문에 대출창구가 다시 경색되고 특히 담보권이 없는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이 중단될 위기를 맞고 있다.

N종금의 한 임원은 "종금사 하나가 무너질 경우 최소 1조원에 달하는 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자금의 블랙홀 현상이 벌어질 것" 이라며 "대기업도 결코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고 말했다.

기아의 7백여 1차 협력업체들의 연쇄부도 가능성도 금융위기 가능성을 더욱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금융계는 협력업체의 부도가 다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확대하면서 금융경색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정부 차원의 긴급 수혈만을 쳐다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박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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