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덕 정무장관 개입으로 가닥잡히는 지정기탁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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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앙선관위 금고에는 두가지 극비문건이 있다.

하나는 법정지구당 당원 30명의 명부다.

이들을 탈당시키면 지구당이 법적으로 와해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가 바로 지정기탁금을 낸 명단과 액수등이 적힌 서류다.

비공개를 원할 경우 밝힐 수 없고 모두 비공개를 원해 선관위는 총액만 밝히고 있다.

선관위가 보안에 신경쓰는 이유는 그만큼 예민한 문제라는 방증이다.

92년부터 올 9월까지의 지정기탁금 총액은 약 1천5백억원. 이 거액을 여당이 싹쓸이해왔다.

여당에는 노다지 광산이다.

김영삼 (金泳三) 정부 출범 이후 여권이 대부분의 정치쟁점에 대해 야당에 양보하면서도 지정기탁금 문제는 한발도 물러서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야권에는 공세의 단골메뉴를 제공했다.

그래서 지금 진행중인 여야 정치개혁 협상에서도 최고의 걸림돌이다.

이런 지정기탁금 제도를 둘러싼 여야의 오랜 줄다리기가 해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꼬를 튼 사람은 홍사덕 (洪思德) 정무1장관이었다.

그는 폐지를 주장했다.

15대 대선까지는 여야가 의석비율로 나눠 쓰고 내년부터는 없애자고 말했다.

洪장관은 선관위에 지정기탁금을 내는 사례가 선진국엔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자 신한국당이 당혹스러워졌다.

신한국당은 폐지의 실효가 없다고 주장한다.

우선 투명화에 보탬이 안된다는 논리를 편다.

야당의 음성적인 정치자금 수수가 근절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야권은 "야당에 돈을 준 것이 알려지면 불이익당할 수밖에 없다" 는 논리로 폐지를 줄곧 고수해왔다.

폐지가 안되면 의석수로나마 배분하자는게 마지노선이었다.

여야가 모두 완강한 자세를 보였지만 부담 역시 적지 않았다.

돈 덜쓰는 정치를 주창해온 여당은 대선을 앞두고 '독식' 에 따른 시민단체등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정부측에서까지 폐지를 주장, 명분도 약해졌다.

그래서 양쪽은 선관위 중재안에 적극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8일 여당 총무가 선관위안의 긍정검토를 밝힌데 이어 익명을 요구한 국민회의 관계자도 "다른 쟁점에 대한 여당측 자세에 따라 선관위안으로의 절충을 검토해볼 수 있다" 고 다가갔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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