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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서평]'백석전집' 김재용 엮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호박잎에 싸오는 붕어곰은 언제나 맛있었다" ( '주막' ) 라든가 "오리치를 놓으려 아배는 논으로 나려간지 오래다" ( '오리 망아지 토끼' ) 같은 백석의 시 구절을 외며 공부한 터여서, 분단 이후 고향인 북쪽에 머문 그의 시를 더이상 접할 수 없는 것을 나는 섭섭하게 생각해 왔다.

그래서 80년대 후반 그의 시가 금서에서 풀려 햇볕을 보게 되었을 때는 여러 차례 그의 시와 새로 나온 시집을 소개하는 글들을 썼다.

그러면서도 북쪽에서 그의 시가 어떻게 변모했을까 늘 궁금했다.

새로 나온 시집도 모두 6.25 얼마전에 발표된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으로 그의 문학을 마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쪽에서 발표된 시가 여러 편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도 불과 몇해 전이다.

바로 그 시들과 함께 그 개념도 우리들에겐 낯선 열두 편의 동화시를 읽는 것이 김재용이 엮은 전집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우리들에게 친근한 민화를 운율에 담은 동화시들은 가락이 있어 읽기도 쉽고 내용도 선명하게 전달되어,가령 말을 배우기 이전의 유아들에게 엄마가 이 동화시를 읽어주면 바른 정서와 생각을 갖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열두 편이 한결같이 재미가 있어 교육적인 효과가 배가되리라. 예컨대 '개구리네 한솥 밥' 은 착한 개구리가 형네 집에 쌀 한 말 얻으러 가는 길에 "발 다친 소시랑게/고쳐주고, /길 잃은 방아다리/길 가르켜주고, /구멍에 빠진 소똥굴이/끌어내주고, /풀에 걸린 하늘소/놓아주고, /물에 빠진 개똥벌레/건져내주고" , 밤 깊어 벼 한 말 얻어지고 돌아오다가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사람이란 서로 돕고 도움을 받으며 더불어 산다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지만, 소시랑게, 방아다리, 소똥굴이, 하늘소의 재미 있고 신선한 이미지와 실감나는 비유로 해서 작가의 의도가 어설프게 드러나지 않는 점도 미덕이다.

'아동문학의 발전을 위하여' 를 비롯 네 편의 평문도 좋은 읽을 거리이다.

비록 아동문학에 관한 것들이지만 백석의 시가 어떤 정서와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는가를 짐작하게 할 뿐더러, 오늘의 우리 문학 특히 아동문학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북에서 발표된 그의 시들은 그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던 여러 궁금증을 풀어 주기에 족하다.

"저녁 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 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 ( '여우난골族' ) 의 활기차고 아름다운 가락이, "우리들의 손뼉 소리에/우리의 찬란한 역사는 이루어지고, /우리들의 손뼉 소리에/우리의 혁명은 큰 걸음을 내짚습니다" ( '손뼉을 침은' ) 의 어설프고 맥빠진 빈 말로 바뀌기까지 그가 경직된 체제 아래서 겪었을 고통이 어떠했을까.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아내와 함께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거리 끝을 헤메이었다"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는 탄식은 어쩌면 오늘의 자신의 모습을 예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대목대목에서 백석의 솜씨가 느껴지는 후기시를 읽고나서 주옥 같은 전기시를 곰곰히 읽는 재미도 이 전집을 읽는 재미에서 빼놓을 수 없다.

이 전집을 읽고나면 시가 재미 없다는 말은 결코 하지 못하리라.

신경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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