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영화]중경상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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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중경삼림 (重慶森林)

MBC 밤10시35분

감독 : 왕자웨이 (王家衛)

주연 : 린칭샤 (林靑霞).진청우(金城武).량차오웨이 (梁 朝偉)

제작 : 1994년 홍콩

95년 한국을 비롯, 전세계에 왕자웨이 선풍을 일으키는데 견인차가 된 작품. 왕자웨이만의 특허받은 영상감각과 영화문법이 무엇인지 확인해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선 주인공이 여러명 차례로 릴레이된다.

이야기가 지나갈 때마다 조연이 주연이 되고 주연이 조연이 되는 뒤바뀜이 절묘하게 흥미를 자아낸다.

왕자웨이의 파트너인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 (杜可風) 의 현란한 화면이 영화에서만 실현시킬수 있는 창의성을 보여준다.

뮤직비디오처럼 짧은 커트들, 역동적인 들고찍기, 연기자의 표정과 조명만으로 대사나 서술구조를 암시하는 방법 등 영화팬들의 탄성을 절로 자아낸다.

특히 유혈이 난무하는 액션 장면에서 이른바 '스탭 프린팅' 이라는 기법을 통해 연기자의 동작들을 크로키 그리듯 표현하는 모습은 영화만이 갖는 호소력을 극대화시킨다.

중국으로의 반환을 앞둔 홍콩의 밤거리는 현대인들이 만들어 놓은 안식처이자 감옥이다.

두 명의 실연한 경찰과 그들의 여자들이 두 커플을 이루며 세기말 젊은이들의 절망과 사랑에 대한 갈망을 뼈아프게 드러내 준다.

편의점에서 유통기한이 거의 다된 통조림만 먹는 외로움. 귀가 따갑도록 '캘리포니아 드리밍' 이라는 팝송만 듣는 희망과 절망의 동시성. 실수를 모르는 냉혈한 킬러와 경찰의 존재. 이들이 스쳐가면서 펼쳐놓는 관계와 삶에선 선악이나 남녀의 구분이 무너지고 기존의 가치관들을 우습게 만들어버린다.

MBC는 원작의 분위기를 십분 살리기 위해 한글 자막으로 방영한다.

채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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