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지지율 조사의 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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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선거를 앞두고 후보나 정치인들은 물론 보통사람들도 자못 현재의 지지율과 앞으로의 결과를 궁금해한다.

따라서 선거결과에 대해 여러가지로 예측하고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속성으로 보아 흥미있는 호재가 아닐 수 없다.

근래에는 전화를 통한 표본조사가 정착돼 보편화했고 모두가 이에 익숙해 있어 민주적 선거에는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누가 어느 당의 후보로 적당한지, 또는 몇몇의 가상대결로 누가 더 유리한지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가상대결에서 지지율이 낮으면 아예 경선도 포기하게 되고,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에는 공천에서 탈락하는 비운도 뒤따른다.

지지도 여론조사란 얼마나 믿을 수 있나. 여론조사도 일종의 측정행위다.

전체 유권자 중에서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비율을 측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유권자를 전부 조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대표로 그 일부를 표본추출해서 이들의 의견을 토대로 통계적으로 추측한다.

따라서 전체가 아닌 일부만의 관찰이기 때문에 참값과 추측 사이에는 표본오차라는 괴리가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1천30명 정도를 조사했다면 95%의 신뢰수준에서 ±3%포인트의 오차한계를 나타내게 된다.

오차한계 3%포인트란 가령 조사결과 지지율 추정치가 27%라면 모집단 전체의 실제 지지율은 27±3, 즉 24와 30%사이에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95% 신뢰수준이란 이러한 방법을 반복했을 때 스무 번에 한 번 꼴로 예측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론조사에는 이것 이외에 비표본오차라는 것이 있어 아무리 표본 수를 늘려도 예측이 정답에 못 미치게 하는 오류도 있다.

사람의 생각을 대화를 통해 얻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대화에는 작용.반작용의 요소도 있고, 전화번호부 자체가 부정확하며 어떤 사람은 아예 전화로 접근이 불가능한 경우등 조사 과정에는 오차를 유발하는 수많은 요인이 잠복해 있다.

모든 응답자가 성실하고 정직하게 대답하고 조사자가 충분한 경험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이런 오차는 상당히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열악한 우리의 조사 환경에서는 상당한 크기의 비표본오차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전체오차는 언론에 발표되는 표본오차보다 훨씬 크다고 봐야 한다.

±3%포인트의 오차한계를 갖는 지지율 조사에서 두 후보의 차이가 6%포인트보다 작다면 이들 두 후보는 오차범위 내에 들어오기 때문에 실제 순위는 뒤바뀔 수가 있다.

즉 순위는 큰 의미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언론 보도에서는 이같은 점이 무시된채 순위매김이 이루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론조사는 투표 당일 참여하지도 않는 기권표까지도 모두 투표할 것처럼 추론에 포함된 것이기 때문에 실제 투표 결과는 다르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20대의 투표율은 50대의 투표율보다 훨씬 저조하며, 학생과 블루칼라 직종에 있는 사람의 투표율도 타 부류보다 매우 저조하다.

따라서 선거 결과의 예측은 이렇게 다른 투표율까지도 감안해야 한다.

흔히 거품지지율이라 하는 것도 투표율과 무관하지 않다.

지지율 조사의 또 다른 문제는 무응답과 거짓 응답에 있다.

전화 조사의 남용으로 조사 주체를 신뢰하지 못하거나, 또는 사생활 침해의 우려 등은 응답을 기피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기대' 에 부응하는 응답을 하는 거짓 응답도 상당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경우의 통계적 처리는 쉽지 않다.

모든 조사는 조사 자체가 피조사자의 생각을 바꾸어 놓기도 하고, 조사 결과가 과잉 경쟁적으로 보도되면 채 형성되지도 않은 '허위 여론' 을 여론으로 굳혀 주는 역기능을 할 수도 있다.

선거와 관련된 지지율 조사는 조사 주체가 좀더 노력하고 심혈을 기울이면 민주정치 정착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으나 흥미위주의 보도 경쟁은 자칫 유권자의 판단 기준마저 흐리게 할 우려도 있는 것이다.

이재창 고려대 교수,통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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