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국가주석 폐지 개헌추진 배경·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북한의 국가주석 폐지 움직임은 공식 출범을 앞둔 김정일 (金正日) 체제가 단순히 권력승계 차원에서 등장할 것이란 관측과 달리 권력구조등의 일대 변혁을 불가피하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가주석은 행정부의 수반격으로 국가주권을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국가기관의 최고직위다.

따라서 주석직 폐지는 단순히 김정일 몫의 권력 일부분을 포기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북한 정권 전반의 권력구도에 손질이 가해질 것이란 점에서 그 파장은 엄청날 수 있다.

특히 주석직 폐지의 사회주의 헌법 개정은 향후 김정일 체제가 나갈 바를 제시할 것이란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국가주석은 북한이 지난 72년 12월 최고인민회의 5기 1차회의에서 기존의 '인민민주주의 헌법' 을 폐기하고 사회주의 헌법을 마련하면서 신설된 자리다.

김일성 (金日成) 유일지배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효율적인 국가통치를 위한다는 의도였다.

이를 계기로 유일지배체제와 김정일 후계체제 완성에 주력했던 북한은 김정일의 후계구도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92년 4월 개정, 사회주의 헌법에서 국가주석 1인에게 집중됐던 권한을 분산시켰다.

주석의 고유권한이던 군통수권을 국방위원장으로 임명된 김정일에게 넘겼고 조약의 비준.폐기도 국가주권의 최고지도기관인 중앙인민위원회로 넘겼다.

주석직 폐지 움직임은 김일성.김정일에게 분할돼 있던 국가권력을 김일성의 사망에 따라 김정일과 제2인자가 나눠 갖는다는데 대한 부담감이 드러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71년 사회주의헌법 제정 이후 북한의 헌법학자들이 "수령제의 제도적 완성" 이라고 자평하던 주석직 조항을 폐지하는 보다 명확한 이유는 베일에 가려있다.

또 주석직 폐지 이후 정권 운영을 위해 어떤 체제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주석직 이전의 통치방식인 내각수반을 통한 정무원 (행정부) 운영체제로 회귀할 것인지, 아니면 또다른 대안을 제시할지도 미지수다.

한 북한전문가는 "국가주석직의 상징적인 의미마저 포기한다면 당이 전면에 나서 국가를 지도하는 기형적인 체제로 갈 수 있다" 고 전망했다.

현재의 당.정 이원체제를 당 중심으로 일원화해 사회주의보다 오히려 전체주의에 가까운 쪽으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당권을 쥔 김정일은 여전히 군최고사령관과 국방위원장직을 가지고 전권을 휘두른다는 것이다.

또 다른 분석은 북한이 집단지도체제를 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흐루시초프 시절의 소련처럼 당총비서와 총리.최고인민회의 의장이 권력을 분점하는 트로이카 체제도 점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