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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배보다 요금 싼 비행기가 없다?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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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4일 오전 서울 김포공항 국내선 터미널. 탑승수속 카운터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가니 양쪽 구석으로 오렌지색·연두색·진홍색 간판을 내건 항공사들이 눈에 띄었다. 제주항공·진에어·에어부산·이스타항공 등 신설 저가(저비용) 항공사들이다.

이들 항공사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과는 직원 옷차림부터 달랐다. 격식 있는 정장 스타일의 유니폼 대신 일하기 편해 보이는 가벼운 복장이다. 특히 진에어 직원들은 연두색 야구 모자에 하늘색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빨간 캐주얼화를 신었다. 항공사 카운터에 앉아 있지 않았다면 대학생으로 착각했을 차림새다.

제주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전화로 예약한 제주항공 카운터로 갔다. 예약번호와 이름을 말하니 좌석번호와 탑승구가 적힌 오렌지색 종이를 탑승권으로 건네줬다. 기종은 기존 항공사에서 흔히 쓰는 보잉 737로 좌석은 모두 일반석이었다. 비즈니스석은 없다. 기내 음료는 오렌지 주스와 생수 두 가지만 제공됐다. 뜨거운 커피나 녹차를 고를 수 없다는 점이 기존 항공사와 달랐다. 승무원들은 기내 이벤트로 어린이와 연인들에게 꽃이나 동물 모양의 풍선을 선물로 줬다. 원하는 승객에겐 조종사 모자를 쓰고 기념사진을 찍을 기회도 제공했다.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가는 길이라는 임수진(34·회사원)씨는 “기존 항공사보다 왕복으로 1인당 5만~6만원 정도 싼 것 같다”며 “부모님과 아내·아기까지 모두 다섯이 움직이니 무시하지 못할 금액”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에 아는 사람이 ‘제주항공을 타봤는데 괜찮았다’고 추천했다”며 “인터넷으로 검색해 특별할인까지 받으니 비용을 많이 아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저가 항공사들이 잇따라 취항하면서 소비자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현재 국내선 취항 항공사는 기존 두 대형사(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에 제주항공·진에어·에어부산·이스타항공이 가세해 모두 여섯 곳으로 늘었다. 제주항공은 20일부터 일본 오사카·기타큐슈의 국제선에도 뛰어들 예정이다. 국내 저가 항공사의 국제선 정기 취항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국내 항공시장도 승객의 성향에 따라 양분화되는 추세다. 돈을 더 내더라도 고급 서비스를 원하는 승객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을, 저렴한 가격을 원하는 승객은 저가 항공사를 고르는 식이다. 기존 항공사는 운황 횟수가 많아 여행 일정과 탑승 시간대를 맞추기 편하고, 환불이나 예약변경이 쉽다. 대신 저가 항공사들은 다양한 특별할인 이벤트를 통해 알뜰 여행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인터넷과 전화로만 예약·판매
국내 저가 항공업계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출자한 지역 기반 항공사가 주를 이룬다. 제주항공은 제주도, 에어부산은 부산시, 이스타항공은 전북 군산시가 각각 주요 주주로 있다. 진에어(대한항공 계열)와 에어부산(아시아나항공 계열)처럼 기존 대형 항공사가 자회사로 설립했느냐, 새로 항공업에 진출했느냐(제주항공·이스타항공)는 것으로도 구분된다.

저가 항공사들은 전화와 인터넷으로만 예약을 받는다. 여행사나 대리점 예약 서비스는 없다. 여행사에 주는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서다. 경비절감을 위해 비행기 운항 횟수를 최대한 늘리고, 일부 기내 서비스를 생략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에어를 제외하면 탑승수속이나 좌석배정 등 일반적인 서비스는 기존 항공사와 거의 같다. 따라서 실제로 타보면 기존 항공사와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는 승객이 많다.

진에어는 먼저 탑승한 승객이 원하는 좌석을 고르는 자유 좌석제를 운영한다. 기내는 ABC의 3개 구역으로 구분되며, 탑승권에는 좌석번호 없이 구역만 배정된다. 승객들은 탑승권에 표시된 구역 안에서 아무 곳이나 빈자리에 앉을 수 있다. 좋은 자리를 잡고 싶은 승객은 일찍 줄을 서거나 추가 요금(5000원)을 내고 우선권을 받아야 한다.

저가 항공사가 운항하는 비행기는 보잉 737이 주종이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이 국내선에 보잉 737과 에어버스 320·330을 주로 투입하는 것을 감안하면 기종 차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제주항공은 캐나다의 봄바르디어라는 회사에서 만든 ‘터보프롭 제트기 Q400’ 기종도 쓴다. 터보프롭은 제트엔진에 프로펠러를 단 비행기다. Q400은 좌석수가 78석으로 보잉 737(189석)보다 적고, 비행시간도 10~15분(서울↔제주 기준) 정도 더 걸린다.

제주항공 송경훈 과장은 “터보프롭은 일본항공 등 외국 주요 항공사의 단거리 노선이나 저가 항공사에서 흔히 쓰는 기종”이라며 “제주항공은 2006년 6월 취항 이후 한 번도 인명 사고가 없을 정도로 안전성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터보프롭은 비행 고도가 낮아 날씨가 좋은 날엔 관광버스처럼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여행하는 즐거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제주 3만~4만원대로 할인
서울(김포)↔제주 노선에는 제주항공·진에어·이스타항공 등 3개의 저가 항공사가 취항하고 있다. 정상요금(편도)은 평일 5만원대, 주말 6만원대지만 승객이 적은 시간대에는 15~25%를 깎아준다. 비행기 요금에서 평일은 월~목요일, 주말은 금~일요일을 가리킨다. 알뜰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인터넷에서 3개 저가 항공사의 요금과 일정을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다만 할인 요금으로 예약했다가 취소 또는 변경하려면 위약금을 물어야 할 수 있다. 공항이용료(4000원)와 유류할증료(2700원)는 별도다.

3월은 비수기에 속하기 때문에 요금이 대체로 싸다. 이스타항공은 서울↔제주 노선에서 최저 2만9900원짜리 표를 판다. 그러나 실제로 이 가격에 제공하는 좌석은 매우 제한돼 있다. 대신 평일에는 시간대에 따라 3만~4만원대의 표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제주항공은 승객이 몰리는 오전 8~11시 무렵을 제외하면 평일에는 4만원대에 예약을 받는다. 진에어도 서울에서 평일 오후에 출발하거나 제주에서 평일 오전에 출발하는 일부 항공편에 4만원대까지 할인을 적용한다.

서울(김포)↔부산(김해) 노선에선 비행기와 기차가 가격으로 경쟁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현재 진에어와 에어부산이 서울↔부산 노선을 취항하고 있는데, 특별할인을 적용한 일부 항공편의 요금이 KTX보다 싸졌기 때문이다. 진에어는 인터넷을 통해 3월 중 평일은 4만원, 주말은 4만6100원에 예약을 받고 있다. 공항이용료와 유류할증료를 더하더라도 평일 비행기 요금이 4만6700원에 불과하다. KTX의 평일(월~목요일) 정상요금은 4만7900원으로 진에어가 1200원 더 싸다. 물론 기차역은 시내에 있고, 공항은 시 외곽에 있다는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 다만 진에어는 이달 말까지만 서울↔부산 노선을 운항하고, 다음달부터는 부산↔제주 노선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에어부산은 아시아나항공의 서울↔부산, 부산↔제주 노선을 100% 넘겨받아 운항 중이다. 따라서 해당 노선에선 아시아나로 예약하더라도 에어부산의 비행기를 타게 된다. 아시아나는 요금을 조금 더 받는 대신 마일리지를 적립해 주고, 에어부산은 요금이 싼 대신 마일리지가 없다. 3월 중 서울↔부산 노선에서 에어부산을 이용하면 평일에는 4만7160원, 주말에는 5만4400~6만800원의 요금이 적용된다.
 
한·일 항공편이 여객선보다 저렴
한·일 노선에선 선박보다 싼 비행기가 등장한다. 제주항공은 20일부터 인천공항에서 일본 오사카까지 주 7회, 규슈 지역의 주요 도시인 기타큐슈까지 주 3회(수·금·일) 운항한다. 취항 기념으로 인터넷 예매 승객에겐 왕복 항공편을 최저 19만9000원에 제공한다. 일부 날짜를 제외하면 아직 할인 좌석에 여유분이 남아 있다. 할인 예약이 마감되더라도 오사카는 4만1000원, 기타큐슈는 2만1000원을 더 내고 일반 좌석을 예약할 수 있다. 그래도 30만~40만원인 기존 항공사 요금에 비하면 70% 수준이다.
부산에서 일본 시모노세키까지 가는 부관훼리는 2~4명이 쓰는 1등실이 21만8500원, 16명 정도가 함께 들어가는 2등실이 16만1500원이다. 4월부터는 1등실 23만7500원, 2등실 18만500원으로 오를 예정이다. 제주항공에서 요금 할인을 받으면 부관훼리 1등실보다 저렴하게 일본 서남부를 다녀올 수 있다. 기타큐슈와 시모노세키는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다.

진에어·에어부산은 이르면 올 연말, 이스타항공은 내년 상반기 중 한·일, 한·중 노선 등 단거리 해외 취항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선을 1년간 1만 편 이상 무사고로 운항하면 국제선에 정기 항공편을 띄울 자격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에어와 에어부산은 지난해 하반기, 이스타항공은 올 1월 각각 운항을 시작했다. 외국의 경우도 저가 항공사들은 국내선에서 경험을 쌓은 뒤 단거리 국제선에 진출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국내 저가 항공사는 규모가 작고 연혁이 짧아 아직 정착하려면 멀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국내 1호 저가 항공사였던 한성항공은 지난해 10월 중순 운항을 중단했다. 영남에어도 취항 4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부도를 냈다. 당시 일부 승객은 예약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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