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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돈에 미친 악당들, 그들을 소탕할 해법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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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적과의 동침
(원제:Rogue Economics)
로레타 나폴레오니 지음, 황숙혜 옮김
웅진윙스, 380쪽, 1만5000원

세계화 덕분에 물 만난 이들이 있다. 바로 악당(Rogue)들이다. 악당들은 국경이 사라진 지구촌 시장을 맘껏 누비며 인간의 삶을 갉아먹는다. 뱃속의 회충처럼. 인간은 양분을 다 뺏기고서야 악당의 횡포에서 비로소 놓여난다. 이 책은 이런 악당들의 종횡무진한 활약상(?)을 다뤘다. 원제 ‘악당 경제학’은 개인·사회·정부를 뛰어넘는 카르텔과 조직력으로 오로지 돈벌이에만 올인하는 경제학을 뜻한다.

짝퉁, 매춘, 담배, 마약…. 악당 경제학의 대표선수들이다. 냉전시대에는 이들의 활약은 지역적이었다. 각 나라가 엄격한 통제를 하느라 국경을 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 소련이 무너지고 베를린 장벽이 헐리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한술 더 떠 세계화 바람까지 불자 정치는 더 이상 경제를 지배할 수 없게 됐다. 고삐 풀린 경제는 곧바로 소비자들을 희생시켜 돈을 벌어들이는 데 올인했다. 빈곤과 불행의 전도사 악당 경제학은 이렇게 등장했다.

악당의 특징은 돈이 되는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춘이 좋은 사례다. 옛 소련의 붕괴로 수백만 슬라브 여성들이 매춘에 내몰렸다. 악당들이 미모와 지성을 갖춘 슬라브 여성들을 내버려둘 리 없다. 집창촌이 곳곳에 생기고 매춘굴과 스트립쇼 극장이 들어섰다. 수백 곳이 성업중인 체코와 독일 국경의 E-55번 도로는 아예 ‘섹스벽(壁)’으로 불린다.

악당들은 슬라브 여성을 세계 곳곳에 공급하기도 한다. 이스라엘이 대표적이다. 매달 집창촌을 찾는 이스라엘 남자는 100만 명. 해마다 3000~5000명의 옛 소련 여자들이 이스라엘로 잡혀와 매춘시장에 팔린다. 하루 18시간씩 손님을 받는 대가는 4달러50센트다. 한번에 약 27달러인 화대의 나머지는 포주, 거간꾼 등 악당들이 나눠 갖는다.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폐혜를 다룬 책은 많다. 그러나 이 책처럼 명쾌한 사례와 분명한 대안을 제시한 책은 드물다. 전세계 짝퉁의 80%를 만들어내는 중국 마피아의 실체, 불법 어로가 판치는 태평양과 지중해의 참치어장에서 한번 쓰고 바다에 버려지는 어부들, 개발도상국 국민의 건강을 파고들며 급성장하는 담배 산업…. 언론인 출신 작가가 스토리로 풀어낸 악당들의 실상은 눈에 잡힐듯 생생하다.

지은이는 악당들을 물리칠 해법도 내놓았다. 이슬람 금융이 그것이다. 이슬람 금융은 샤리아(이슬람의 법체계)의 율법에 따라 더러운 거래가 금지된다. 마약·매춘·담배 산업에는 투자할 수 없다. 투기도 안되고 이자를 받아서도 안 된다. 코란이 불로소득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예 더러운 돈이 끼어들 틈이 없다 보니 악당 경제학의 승냥이들이 이빨을 내밀어도 물어뜯을 곳이 없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위기로 달러 패권 시대가 끝날 것이며 그 자리를 이슬람 금융이 대신할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금본위제로 돌아가야 요즘 경제 위기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도 곁들였다. 튀는 해법과 주장이지만 귀 기울일 만하다.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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