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신속한 조사로 ‘사법부 e-메일 파문’ 확산 막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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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사법부가 소란스럽다.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있던 지난해 촛불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재판과 관련해 이를 담당한 판사들에게 e-메일을 보낸 사실이 뒤늦게 공개됐다. 이를 두고 법원 고위층이 재판에 압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확산되면서 대법원이 진상조사에 나섰다.

논란의 핵심은 신 대법관이 촛불시위 재판에 대해 “통상적 방법으로 현행법에 따라 결론을 내려달라”고 당부한 것을 ‘판사들에 대한 압력 행사’로 볼 수 있느냐다. 일부에서 주장하듯 시위 참가자들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리는 방향으로 몰아가려 했다면 이는 부당한 압력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헌법 103조)해야 한다. 공정한 재판을 위해 누구도 법관에게 압력을 행사해선 안 된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 지법원장으로서 사법행정을 지휘·감독한 당연한 행위라 볼 수도 있다. 재판이 지연되는 사태를 우려한 법원장이 신속한 재판을 독려한 것이라면 문제될 게 없다. 사법권이 적정하게 행사되도록 독려하는 것이야말로 법원장에게 주어진 직무이자 사법행정권이다. 물론 ‘대법원장도 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으신 것으로 들었다’는 등의 e-메일 내용이 오해를 부를 소지가 없지 않다고 보인다. 그렇다고 ‘법원장으로 못 할 일을 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번 파문은 법관의 독립성 보호와 법원장의 지휘·감독권 행사라는 두 가치가 상충하는 사안이다. 더욱이 파문의 단초가 된 촛불시위와 집시법 등에 대해서도 법원 내에서 세대에 따라, 정치적 관점에 따라 시각이 첨예하게 갈려 있다.

따라서 신 대법관의 재판 개입 여부에 관한 실체적 진실을 명확하게 밝혀내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 먼저 문제의 e-메일을 둘러싼 당시 상황이 전체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e-메일을 보낸 경위와 당시 재판 사정, 해당 판사들이 압박으로 느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사법행정권의 한계를 가리는 것도 필요하다. 조사는 객관적이고도 냉정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진행함으로써 소란이 확대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