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어리광을 받아주는 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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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며칠전 신문 사회면 한 구석에 눈길을 끄는 기사가 있었다.

큰아들은 학교 성적이 뛰어나고 몸가짐이 바른 모범생이다.

둘째는 공부도 못하고 부모 말도 듣지 않는 말썽꾸러기다.

소년범으로 법원에 들락거린 것이 한 두번이 아니다.

부모의 속마음은 두 아들을 똑같이 사랑할지 모르지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갈라진다.

아버지는 큰아들만 위하고 둘째를 구박한다.

어머니는 문제아인 둘째가 더 걱정스럽다.

둘째가 집을 나가자 어머니도 따라나가 셋방을 얻어 보살핀다.

아버지는 부인이 2년이 넘도록 남편을 돌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혼소송을 내지만 판사는 부인의 편에 선다.

아버지가 모범생 큰아들만을 편애 (偏愛) 하기 때문에 어머니가 문제아인 둘째를 돌보기 위해 집을 나간 것이므로 이혼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판결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확연하게 알리는 이야기다.

나와 상담하는 어머니들 가운데도 이처럼 자식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고등학생인 아들이 불량배와 어울려 도둑질한 결과로 경찰서에 가면 그 아들을 꺼내기 위해 안달이다.

초범이라면 이해가 가지만 상습범일 경우에도 어머니는 아들이 감옥에 가지 않기를 바란다.

감옥이 아들을 바로잡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설득하면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섭섭한 표정으로 돌아선다.

왜 문제아들이 생겨날까. 아이들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좋아한다.

학업.스포츠.미술.음악 등 다방면에서 우뚝 솟아오르려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보니 사람들은 일등을 좋아한다.

사람들이 박찬호 (朴찬浩)에게 미치는 것을 보고는, 아이들은 저 같은 스타가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일등의 숫자와 분야는 제한돼 있다.

시골에서 고추따기를 잘하거나 풀베기를 잘하는 아이는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한다.

공부로 일등하지 못하면 운동이라도 잘 해야겠는데 그것도 여의치 못하다.

별 수가 없는 아이들은 '깡' 이라도 부려서 사람의 관심을 끌려고 한다.

아이들만 그럴까. 어른도 마찬가지다.

극악무도한 흉악범도, 미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군가의 정을 끌어내기 위한 방편으로 범죄를 저지른다.

술집과 사창가를 배회하면서 '한탕' 을 모의하는 악한도 누군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돈을 마련하려고 한다.

얼마전 텔레비전에서 사회자는 한 대통령 후보에게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을 때 부인이 없으면 화를 냅니까" 하고 묻는다.

그 후보는 "화내지는 않지만 아주 허전합니다" 라고 대답한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집에 돌아오면 부인의 보살핌에 안기고 싶어한다.

남자도 냉장고의 보리차를 꺼내 마실 수 있지만 부인이 애정 어린 손으로 가져다주기를 바란다.

남편은 부인에게 짐짓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한다.

인간은 정에 굶주린 업 (業) 을 안고 태어난다.

어머니의 사랑을 끌어내려고 아기는 어리광을 부린다.

아기의 어리광을 어른의 것으로 확대해 보면 심술이나 말썽이나 범죄가 된다.

돈.권력.명예.힘 등으로 관심을 끌려고 하는 사람은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리석고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은 계속 생겨날 것이다.

학교나 사회의 모범생에 대해, 그리고 상대가 편안하게 받아줄 수 있도록 적당히 어리광을 부리는 사람에 대해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스스로 좋은 대접을 받으며 잘 살 것이다.

파렴치하게 밉상으로 나오는 어리광이 우리를 필요로 한다.

'오직 내 새끼에게만' 으로부터 '남에게도' 로 승화시킨 사랑을 필요로 한다.

또 어리광을 '부리는 사람' 과 '받아주는 사람' 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

저 둘째아들 역은 너무도 많다.

그를 보살피는 어머니역이 부족하다.

우리가 저 어리광들을 받아주는 세상의 어머니로 나서야 한다.

나의 어리광은 가능한한 적게 부리고 남의 어리광은 무한히 받아줄 수 있는 아량 넓히기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

석지명 <청계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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